62년 외길 택시기사 최근화 씨
62년 외길 택시기사 최근화 씨
  • 시민필진 신현숙
  • 승인 2018.03.19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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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으로 부모 잃고 졸지에 가장되어 잡은 택시 운전대

62년 택시는 동고동락한 내 친구, 함께 지구200 바퀴도 더 돌았을 겁니다

유난히도 추웠던 겨울이 떠난 자리, 샛노란 산수유가 올망졸망 맺혀있는 철망산 둘레길 끝자리 쯤에서 네 번째 광명사람’  최근화(88세, 미수米壽 하안동)씨를 만났다.

우리 주변의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흔히 "내가 살아 온 얘기를 책으로 엮으면 몇 권은 된다" 고 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근현대사를 살아 낸 분들의 드라마 같은 사연이 많아서일 것이다. 6.25 전쟁으로 부모님과 막내 동생을 잃고 자신은 총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전 예비역 해병대 삼등병조(:하사) 최 씨는 얼룩무늬 해병대 군복과 빨간 모자가 썩 잘 어울리는 어르신이다.

광명시의 큰 행사장 마다 교통봉사를 하고 있는 해병전우회 소속으로 꾸준히 봉사해오고 있다.

자신이 6.25전쟁 중 총상을 입은 장단 전투의 현장이 멀지않은 임진각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자신이 6.25전쟁 중 총상을 입은 장단 전투의 현장이 멀지않은 임진각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6.25 전쟁나자 해병대 자진입대, 장단전투에서 총상 입어

충북 영동이 고향인 최 씨는 공주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영동의 남성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아 6.25가 터졌다.아무생각 없었어요. 전쟁이 났는데 대한민국 젊은이면 나가 싸워야지요. 무조건 해병대에 자원입대 했죠. 제주도에서 군사훈련 조금 받고 곧 전선에 투입 되었어요. 마침 아군이 인천상륙 작전에 성공해 백두산 까지 진격한 아군은 곧 통일이 될 줄 알았어요. 그 꿈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무너지고 말았지만, 지금도 꿈에 중공군이 개미떼처럼 몰려와 육박전을 벌이는 악몽을 꾸기도 해요라며“ 6.25전쟁 내내 최전선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치르며 사선을 넘나들며 죽을 고비를 넘기기를 수없이 반복했다고 회상했다.

도솔산전투(양구), 김일성고지전투(철원), 원산령전투(개성 부근), 장단전투(임진강 부근) 등을 치렀으며,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중공군의 참전으로 밀려 파주장단전투에서 두발의 총상을 입었다. 장단은 수도서울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적정을 살피기 위해 분대장으로 15명의 분대원을 이끌고 캄캄한 어둠을 틈타 기차역 플랫폼을 건너는 순간 어디서 드르륵총소리가 들렸다. 임무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에 분대장님 총 맞은 것 같아요라고 어느 분대원이 말했지만 확인할 수 없었다. 시간을 지체하다 적에게 노출되면 대원 모두가 위험해 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위험지역을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지점에서 군화를 벗어보니 피가 흥건히 고여 있고 바짓가랑이는 피에 흠뻑 젖어있었다. 확인해보니 총알 한방은 배꼽 옆 오른쪽 옆구리에 박혀있고 한발은 오른쪽 허벅지 바깥쪽을 관통하고 지나갔다.

너무 긴장해 아픈 줄도 몰랐다. 대검 끝으로 파내보니 콩알만한, 흔히 따발총으로 불리는 기관단총 총알이었다. 이 총알은 제대 후에도 얼마동안 간직하고 있었는데 언제 잃어 버렸는지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다섯 번의 큰 전투에서 육박전으로 앞니가 부러지고 턱이 빠지기도 했다.

 

호국영웅기장증.
호국영웅기장증.

 

초등학교 교사 직업 버리고 택시운전 시작

전쟁이 끝나고 1954한달의 휴가를 받아 고향에 가보니, 부모님이 인민군 패잔병들에 의해 살해되어 밭둑에 묻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장남도 없이 매장할 수 없다며 임시로 가매장해 놓은 것이었다. 이미 막내 여동생은 부산 피난길에 죽고 없었고 6명의 동생들은 거지처럼 살고 있었다.

제대 후 교사로 복직했지만 박봉의 월급으로는 도저히 동생들을 공부시킬 수 없어 무작정 동생들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역에서 석 달을 노숙하다가 군대서 배운 운전 기술로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열심히 일한 덕에 동생들을 공부 시킬 수 있었다.

일본교통안전교육세미나 수료증.
일본교통안전교육세미나 수료증.

 

택시에 희망 싣고 행복 싣고 62년 동안 지구 200바퀴를 달렸습니다

최 씨는 1957년 결혼해 3남매를 두었다. 1960년대 후반, 서울에도 개인택시가 처음으로 생겼다. 지금 기억에는 그때 맨 처음 개인택시를 30대 정도 받았어요. 남들은 택시운전하면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소중한 보석 같은 존재입니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62년을 택시운전 하나만의 외길을 걸어온 사람은 최 씨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며, 85세 까지 택시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몇 안 된다. 1995년에는 40년 무사고 운전 경력으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철원 김일성고지를 찾은 최근화 씨 부부.
철원 김일성고지를 찾은 최근화 씨 부부.

 

제일 잊지 못할 일은 88서울올림픽 때 일본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올림픽 특별회원이 된 것

 

최 씨는 우리나라 택시의 산 증인이자 자동차 발달사를 지켜본 사람 중 하나다. 한평생 택시운전을 하면서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을 “88서울올림픽 때 일본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올림픽 특별회원이 된 것과, 1984일본 교통안전교육 세미나에 참가하여 일본 운전기사의 접객자세에 관한 강의 등 선진국의 택시문화를 배울 수 있었던 일로 꼽았다.

현재는 택시운전은 접고 봉사활동을 하며 여가를 즐기고 있다.

88올림픽특별회원증.
88올림픽특별회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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