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유년 보낸 광명에 추모공간
삶의 궤적 따라 공들인 전시실 구성
대표작 미디어아트·일상적 유품들
시인의 추억과 만나며 인생 돌아봐
'당신의 청춘은 어떤 모습인가요'
누군가는 청춘이 푸르다 찬양하고, 또 누군가는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청춘이 내포한 삶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아서 벌어진 촌극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기형도는 청춘의 시간에 머무르는 이다. 적어도 우리의 기억 속에서 그는 영원히 '청춘'의 아이콘이다.
찬란했던 그 스물 아홉 해의 시간은 어땠을까. 그의 청춘을 군더더기 없이 담아낸 공간을 방문했다. 시인이 유년을 보낸 광명에 그의 공간이 문을 열었다.
광명 기형도문학관은 지난해 11월 개관했다. 군데군데 아직 새 것의 티를 벗지 못했지만 그 안의 내용을 살펴보면 방문하는 이가 기형도 시인을 충분히 추억할 수 있게 조성됐다.
문학관은 시인을 추억하는 전시실에 많은 공을 들였다. 전시실은 기형도의 시간을 따라간다. 이야기 하나, 둘, 셋으로 나뉜 공간은 좁은 골목길을 걷는 유년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첫 이야기는 그의 유년시절이다. '유년의 윗목'이라는 첫 방의 이름도 그의 시 안에서 따왔다. 이 공간은 그의 시 중 '겨울 판화'시리즈와 연결됐다. 유년 시절, 그의 성실함을 묻어나는 상장과 체력검사표, 필기노트 등 유품이 그의 시와 나란히 전시됐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
'엄마 걱정' '나리나리 개나리' 등 이 곳에서 만난 그의 시는 유독 시린 추위의 겨울에 가깝다.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고, 가세가 기울면서 엄마는 열무를 이고 시장에 나섰다.
누이들은 공장에 나가 돈을 벌여야했고 불행이 겹쳐 손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시를 습작했다는 그는 어쩌면 시를 쓰지 않으면 그 시절을 견디지 못했을지 모르겠다.
유년의 골목을 돌아 나오면, 안개의 강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에게 '시인'이라는 짤막한 이름표 하나를 더해준 시 '안개'가 미디어로 재현됐다. 짙은 회색의 화면 안에 '안개'의 시어들이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한다.
관객의 발 밑으로 강물처럼 시가 흘러가고, 동시에 시를 읽어 내려가는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귀를 자극한다. 시각과 청각으로 그의 시를 만끽하고 감정을 이해하는 공간이다.
두번째 이야기 방은 그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시기라 불린다. 연세대 숲길 '백양'의 이름을 따 '은백양의 숲'으로 지었다. 그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인이 되길 갈망했다.
끊임없이 시를 썼고 연구했다. 이 공간은 시인이 되고자 노력했던 그의 흔적을 자세히 볼 수 있다. 연세문학회 친구들과 습작시를 평론하고 함께 고민하기도 했고, 그가 가장 자랑스러워 했다던 '윤동주 문학상'도 전시됐다.
마지막 이야기 방은 '저녁 정거장'이다. 이 곳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패와 그가 입었던 양복,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며 쓴 글 등 그의 마지막 시간을 살펴보는 유품들이 정리됐다.
전시실 한 편에 그가 20대 어딘가에 머물렀을 법한 공간이 조성됐는데, 그의 사후에 현대시세계를 통해 발표된 시 '빈집'이 가득 채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로 시작되는 시는 시인 특유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걸작이다. 어두운 빈 방에 홀로 서 그의 방에 실존했던, 이제는 멈춰버린 시계와 어슴프레 비추는 창문을 사이로 시 '빈집'을 읽고 느낄 수 있다.
기형도 문학관을 꼼꼼하게 돌아본 이라면 시인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시인의 가족들과 문학회,직장 동료 등 지인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기형도를 끄집어 내는 일에 정성을 다했기 때문이다.
문학관 곳곳에 기형도의 시를 만끽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뒀고, 그 아이디어가 요샛말로 꽤 신박하다.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기형도를 공부할 수 있도록 구성해 '청춘'의 감각도 물씬 배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