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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대가 품은 사람들, 그 너른 이야기

정감어린 자연 환경과 소박한 삶이 공존하는 마을, 광명5동 너부대마을

  • 기자명 시민필진 현윤숙
  • 승인 : 2018.07.26 10:22
  • 수정 : 2018.08.20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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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부대마을 종가집 옆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고 그 옆에 우물이 있었다... 황금닭도 울었다~

염이 맹위를 떨치는 7월 하순 뜨거운 햇살이 우리를 마중하고 있다.

발길 닿는 곳마다 시간이 멈춘 듯하다. 세월을 품은 자연마을 너부대마을의 이야기도 무르익는다. 여름을 알리는 능소화도 더위에 지쳐 고개를 떨군 듯하다.

 

광명5동 도시재생 지역
광명5동 도시재생 지역

 

옛날에는 넓은 벌판이었으며 정월이면 들판에 쥐불을 놓아 넓게 타는 불꽃이 장관을 이루었다는 너부대. 그 모습을 따, 광화대(廣火大)라는 법정 자연마을 명칭도 있다.

 

너부대는 황씨가 처음 정착하여 마을을 이루고 배천 조씨, 신안 주씨 등이 들어와 터를 잡았다. 가장 번창한 성씨는 광주 안씨 감찰공파 후손들로 사방 40리가 광주 안씨 땅이어서 광주 안씨의 땅을 밟지 않고는 다닐 수 없을 만큼 집성을 이루었다고 한다. 너부대 하면 으레 광주 안씨를 연상할 정도였다.

조선말기에는 시흥군 서면 광화대리가 되었으며 1964년 시흥군 서면 광명1리에 속하다가 1981년 광명시 승격으로 광명시 광명동에 속하게 됐고, 행정구역상으로는 광명5동 일대다. 저지대에 있어 장마철이면 범람하던 곳으로 1968년부터 1972년까지 대한주택공사에서 약 1.26㎢의 택지 조성을 하면서 자연마을은 사라지고 현재의 주거모습으로 변하였다.

현재는 현진, 월드, 제일풍경채 아파트가 재건축 되어 마을의 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마을의 중심에는 너부대 근린공원이 있고 보호수로 지정된 너부대 향나무 두 그루가 있다.

마을의 서쪽 목감천변에서 주민들이 고사를 지내기도 했고, 여름철이면 정자나무 구실을 하던 느티나무 세 그루는 1980년 방화로 없어졌다.

옛 광명시청 주변(국민은행)에 형성된 새마을 시장은 1986년 이래 상권을 이어오고 있으며 광명사거리 시장보다 규모가 작아 일명 작은 시장으로 불리기도 한다.

 

현 새마을 시장 입구에서
현 새마을 시장 입구에서

 

 

# 너부대에서 만난 사람들 1. (채00, 최00 부부)
 

추억은 너부대를 타고...

 

 


지금은 동네에서 찾아 보기조차 어려운 소금가게.

간판조차 없는 이 가게를 25년째 운영하고 있는 부부이다.

개봉ㆍ 광명 60만 단지가 조성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을 떠나 46년 7개월째 이 곳에서만 살아온 이들 부부에게 너부대는 특별하다.

신안 천일염만을 판매하는 소금가게는 멀리서도 소문을 듣고 찾아올 정도로 유명 했는데 요즘은 하루에 30kg(15,000원) 한포대만 겨우 나갈 정도로 손님이 줄었다고 한다.

염전에서 채취, 간수 증발 한 묵은 소금일수록 좋은 소금이다. 현재는 황토소금까지 유통될 정도로 소금도 많이 변했다. 몇 년 전만해도 국수와 소금 모두 주식이었던 시기여서 위생검열이 더욱 철저했다는 얘기가 사뭇 새롭다.


이들 부부는 남편이 17년간, 부인이 12년간 광명 5동에서 통장을 했다. 부부는 목감천 물줄기를 경계로 시흥군 서면 광명리에 대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옛부터 너부대에는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산다 말이 나올 정도로 상습침수 지역으로 유명하다.

 

소래 포구까지 자전거로 물건 배달을 하기도 했다. 시장 건너 줄방죽 평안운수 차고지가 지금의 한진 아파트 후문에 있었고, 경기유치원 쪽(270번지)은 국유지였다.

500년 전 너부대에는 주씨, 안씨, 강씨, 조씨들의 토박이들이 살았는데 간식을 나누어 먹을때에도 주씨의 눈치를 보고 먹어야 할 정도로 토박이들의 텃새가 심했다.

한때 너부대 토박이들이 30호 정도 살았는데 현재는 불과 5집밖에 남지 않았다. 조용화, 강은천, 안병규, 주기창 등의 어르신은 모두 돌아가시고  그 시절 땅 소유도 불분명하다.

 

 

옥길동 사람들이 밭에서 직접 기른 야채를 재배해 야채를 팔기도 할 정도로 이 곳 너부대는 번화한 명동거리 같은 존재였다.

이들 부부는 전남 보성, 고흥 출신으로 명문 상고를 졸업한 재원이다.(당시는 20리 길을 걸어 고등학교에 다녀야했고, 그마저 학생 신분은 마을에 한 두명밖에 안 됐다고.) 

구식 혼례를 치른 것과 집을 사기까지의 이야기. 국수가 주식이던 그 시절, 기아산업에서 삼륜차로 하루에 쌀 25포를 실어가기도 했다는 에피소드.  밀가루가 70원일 때, 20원의 이윤이 남았다는 것과 한때 방앗간과 아채 가게를 했지만 20일 만에 접어야했던 일화까지 더해 너부대와 얽힌 추억 여러 개가 쉼없이 전해졌다.

이제 부부는 고향보다도 더 오래 머문 너부대의 오랜 구옥이 좀 더 살기 편한 집으로 변화되길 기대하고 있다.  

# 너부대에서 만난 사람 2. (안00, 황00 부부)

나의 뿌리, 나의 역사 너부대

 

너부대 공원
너부대 공원

 

너부대에서만 300년째 거주하고 있는 광주안씨 감찰공파 장손 안씨. 초가집이던 종택은 한옥을 거처 1988년 현재 건물로 재건축 됐다.

종택에서 태어나 지금은 오십이 넘었다. 결혼 후 잠시 철산동에 분가하기도 했으나 종택 관리와 제례 봉양으로 다시 이 곳(약220평)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한때 안씨만 100여 가구가 넘을 정도로 많이 살았으나 이제는 안씨의 집만 남았다.

광명서초교 주변과 다리건너 도시철도 기지국, 심지어 천왕산에 이르기까지 넓은 들판에 군데군데 촌락을 형성하고 있었다고 하니, 왜 이름이 너부대인지 가히 짐작할 만하다.

 

행정명의 변화 :  시흥군 서면 광화대리 ▶1914년 시흥군 남면 광화대리 1964년 시흥군 서면 광명리 1981년 광명시 광명5동(현재)

너부대에 어떤이는 황씨가 주로 살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광주안씨라고도 한다. 배천조씨, 신안주씨, 강씨등도 많이 살았으나 현재는 광주 안씨만이 조상의 숨결을 지키며 종택을 지키고 있다.


 

추억어린 장소, 목감천
추억어린 장소, 목감천

 


 

너부대(광화대리)는 임금님이 하사한 지명이라는 소문이 있다.

광명교육청 맞은편 괭매(광명)는 포도밭집이 많았다.

냇가(목감천)는 수인 산업도로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어릴 때 본 오씨종산은 상당히 컸다.

 

괭매 아이들 힘이 상당히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이들과 오씨종산에서 늘 놀았는데 큰 느티나무는

가장 좋은 장난감이 되기도 했다. (참, 뱀들도 많았다.)
지금 광명5동 주민센터 자리가 바로 우리 집이었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목감천에서 수영을 하고 놀았다. 목감천을 건너던 기억이 생생하다,

또 한옥집에 어깨까지 물이 차서 2층으로 피신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모두 늘 홍수가 지나가는 길이니 집을 높게 지어야 함을 강조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교육방침은 말, 빚보증, 주먹 등을 조심해야한다는 것!
무엇보다도 조상의 땅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

 

안씨는 본인의 아들에게도 똑같은 교육방침을 강조하고 있으며 뉴타운 개발에 대해서는 종택을 지키는 종손으로서 개발에 따른 부담이 있다고 고충을 전했다. 선산은 장절리에 있으며 보금자리지구로 지정돼 있다.

광명사거리 복개공사와 함께 동네곳곳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현재의 코사마트 쪽 대우전파사 골목 사잇길엔 1개에 1원하던 국화빵을 팔던 곳이 있었고 떡볶이도 즐거운 먹거리 였다며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고.

# 너부대에서 만난 사람 3. (김영이 님)

국수 너는 바람 좋고, 맑은 날만 가득하길

 


어릴 적 뛰놀던 고향에서나 볼 듯한, 시골 신작로에나 있을 법한 국수가게(273-2번지).

소망연립 에서 산지 25년 되었다는 김영이(65세) 씨. 쌀, 잡곡, 소금을 파는 ‘충남상회’라는 간판이 정겹다. 옛 광명5동 주민센터(현 문화의집)앞에 있다.

국수를 직접 뽑아 말리는 모습은 어디서도 보기 힘든 광경이다. 처음엔 기술이 서툴러서 많이 힘들었지만 25년 넘게 국수를 만들면서 국수의 달인이 되었다.

 

 

국수는 특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적절한 바람과 햇빛이 들 때 국수를 말려야만

제대로 된 쫄깃한 국수를 만들 수가 있다.

 

요즘처럼 너무 강한 햇빛에는 국수가 부숴지기 쉬워 잘 널지 못한다. 

방송에서 천장에 선풍기를 매달아 놓고 국수를 말리는 모습을 보고 따라하니까 잘 건조되더라.

우리집 국수는 자연건조하기 때문에 유난히 맛이 좋다고 손님들이 멀리서도 찾아오신다.

 

하지만 재개발로 언제 가게를 비우고 떠나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오래 장사한 만큼 정이 쌓여 이 동네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지금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 있겠지만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영원하리라 믿으며, 정겨운 풍경을 깊이 깊이 눈에 담았다.

 

 

너부대마을에 있는 수령 약 250년 보호수, 향나무.
너부대마을에 있는 수령 약 250년 보호수, 향나무.

 

너부대 향나무는 높이 20m, 둘레 2.3m이다. 향나무는 나무를 깎아 향으로 쓴다. 붉은색이 나며 윤이 나고 결이 좋아 고급 가구재로 쓴다. 가지와 잎은 잘라 말렸다가 약으로 쓴다. 상처와 피부병에 잘 들고, 뱃병이 났을 때 먹기도 한다. 너부대 향나나무는 2000년 1월 3일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광명5동의 주민센터 뒤편에 있는 너부대 근린공원 어귀에 있다. 나무의 상태는 양호하나, 껍질이 많이 벗겨져 있다. -광명5동 주민자치위원회-

 

# 광명5동의 재개발 현주소

 

<재건축을 기다리는 동네 어귀>

 

 

광명5동은 2017 국토부 도시재생뉴딜 사업의 첫 시범 단지로 확정, 노후화된 저층 주거지를 대상으로 추진되는 주거지 지원형이다.

광명5동 164번지 일원(66.960㎡)에 추진되며 2018년부터 2021년까지 총사업지 444억원이 투입된다. 도시재생 플랫폼으로는 원주민 이주, 순환주택, 청년주택 창업지원센터가 조성되고 생활밀착형 동네체육관 등 복합 커뮤니존 설치, 너부대 마을숲 산책로 정비, 생태 휴식공간 조성 등 복지시설을 확충해 삶의 질이 개선 될 전망이다. 

 

 

또 광명 제9R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이 한창인 광명동 275-3번지 일원(64.705.0㎡)은 1,498세대, 용적률260.22%, 조합원수는 892명으로 현재 건축심의가 통과된 상태이다.

 

 

고가의 아파트단지가 다수 건설되지만 상대적으로 소득수준이 낮은 원주민들은 부동산 값이 오르는 것 보다 당장 살아갈 집이 우선이니, 조합분담금에 대한 부담으로 재개발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재래시장 근처에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서 재래시장 상권침체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상인들도 있다.

 

뉴타운 사업은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이 공존하기 마련이다. 재산권을 둘러싼 반대와 찬성 속에서도 광명 제9R구역 주택재개발 사업이 이제 본 궤도에 올라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순조롭게 진행되길 바라는 주민들의 마음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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