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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나라, "대한민국"

역사학자 전우용 『3·1운동과 대한민국 헌법정신』 강연회

  • 기자명 시민필진 정라영
  • 승인 : 2019.05.01 09:42
  • 수정 : 2019.05.01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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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김구,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임시정부를 견지해왔던 3.1 정신을 끝까지 이끈 분이 백범 김구선생이다. 마지막 임정 주석으로 새로운 정부를 건설하기에 앞서 ' 내가 원하는 나라' 에 쓴 글에는 우리 헌법 정신이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있다.

 

안도서관에서는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고 제55회 도서관주간을 맞이하여 418일 저자초청강연회를 열었다.

전우용 강사는 세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첫째, 3·1운동이 헌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둘째, 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적 가치를 실제로 공유하면서 살고 있는가?

셋째, 3·1운동을 가능케 한 인류사의 흐름은?


 

#1. 3·1운동이 헌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헌법전문에는 역사적 사건으로써 3·1운동과 4.19 의거가 나오는데 이 두 가지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이다.

 

현행 헌법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그렇다면 우리의 과제, 한국인의 사명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조국의 민주개혁 발전과 남북 간 평화적 통일이라는 것이다.

그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개혁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한 마음으로 뭉쳐야 하는데 그 가치로 정의· 인도·동포애로 제시한다.

 

현재 헌법 전문의 내용들은 1948 7 월에 제정된 제헌헌법의 내용들을 그대로 옮겨 쓴 것이다.

 

제헌헌법에서는 임시정부의 법통이라 하지 않고 ' 기미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라 적고 있다. 건립은 건국을 말하는데 3·1운동으로 건국했다는 것을 써 놓았다.

또한 정의·인도와 동포애5공화국 헌법을 제외한 역대 모든 헌법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 핵심가치이자 민족의 단결을 이루는 중심 가치로서 헌법 전문에 들어가 있다.

아무리 역사학적 해석이 다양하더라도 건국에 대해서 그리고 정의·인도와 동포애의 가치는 명확하게 명문화한 헌법적 약속이었다.

 

또한 제헌헌법에 들어간 정의·인도는 기미 독립선언문에 명시된 정신이었다.

 

  • 금일 오인(吾人)의 차거(此擧)정의·인도·생존·존영(尊榮)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요,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일주(逸走)하지 말라.

 

민족적 요구의 맨 앞에 들어가는 단어가 정의와 인도. 그것은 3·1운동 때 그토록 갈구하고 강조했던 것이 바로 정의와 인도였기 때문이다.

 

 

이 가치는 191931일 이후

1948년에 갑작스럽게 헌법에 넣은 것이 아니라

국내외에서 매년 3·1절을 기념하며

반복적으로 새겨졌기 때문에 제헌헌법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잠깐!!


1독립기념일행사는 어디서 했을까?


‘31, 1회 기념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날, 이곳 한인 사회는 온통 명절 기분으로 맞았다. 집집마다 국기를 단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떤 이는 중국인 집 2층을 빌려 두 개의 국기를 교차하여 걸었다. 기념식장에서 돌아오는 길에 소학생 몇이 탄 인력거 위에 태극기가 좌우로 날리는 것이 볼 만했다. 웬 일본 여자 셋이 마주 오다가 앞뒤에서 태극기를 두르고 이것 보라는 듯이 떠드는 것을 만나 기색 좋지 못한 얼굴로 비실비실 달아나는 것은 볼만했다

-192031일 상하이 임시정부 주최의 교민독립기념일 축하연(상하이에서 발행된 독립신문 스케치)


 

 

# 2.우리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헌법적 가치를 실제 공유하며 살고 있는가?

-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으며, 아쉬운 점 두 가지

 

  •  3·1절을 독립기념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3·1운동을 만세운동이라고도 한다. 만세는 황제에게만 바치는 축수(祝壽)인데 191931일에는 황제 없이 2천만 각자가 주인이 되어 황제의 의미를 대신 차지했다.

 

3·1절은 독립기념일이 아니고 독립선언기념일이다.

우리가 독립했음을 경축하는 날이다.

독립을 달라고 만세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독립을 했으니 기뻐서 만세를 부른 것이다.

 

그래서 국경일인 것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서는 개천절과 함께 삼일절을 국경일로 경축해왔다.

삼일절이라는 이름도 임시정부에서 붙인 것인데 임시정부가 여러 번 옮겨 다니면서도 삼일절은 빠지지 않고 기념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미국 샌프란시스코·하와이, 쿠바 아바나 등 한국인이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삼일절을 계속 독립선언일로 기념했다. 그렇기 때문에 1948년 제헌헌법에서 국경일에 대한 법률을 제정할 때 삼일절을 4대 국경일로 넣은 것이다.

 

  •  3·1운동의 가치인 정의·인도·동포애(형제애)를 상징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념물을 세우지 않고 있다는 것

 


  • 프랑스 1789년 프랑스혁명

- 자유·평등·박애의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천명하고, 세계 민주주의 역사에 새 장을 열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 100년 뒤인 1889년 세계만국박람회를 개최하고 박람회장 정문으로 만든 것이 에펠탑이다.

 

  • 미국 177674일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

- 미국 독립 100주년인 1876년을 기념하여 프랑스에서 선물을 주겠다는 것이 늦어졌다. 1884년 뉴욕 허드슨강 입구에 자유의 여신상이 섰다.

 

  • 브라질은 1822년 포루투칼에 독립을 선언

- 브라질 예수상이 100주년 다음해에 착공해서 1931년 완공된다.

 

 


 

우리 대한민국도 세계인들에게 우리 독립운동의 가치인 정의·인도·동포애(형제애)를 상징할 수 있는 세계적인 기념물을 세워서 삼일정신을 되새기고 100년 후 후손들에게 선물을 하나 남겼으면 한다.

 

 

#3. 3·1운동을 가능케 한 인류사의 흐름은?

 

▲100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과정을 그린 그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인간 최고의 관념적 창조물인 신(神)을 만들어냈고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100만년에 걸친 인류의 진화과정을 그린 그림.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는 인간 최고의 관념적 창조물인 신(神)을 만들어냈고 비로소 인간이 되었다.

 

 

신에게 속박된 인간

"동물적 욕망을 억제하면서 사는 것이 인간성을 완성하는 길"

신을 의심하는 인간

"이 땅은 둥글다!" 신에 대한 불신, 의심, 원망이 쌓여가는 시대"

동물이 된 인간 - 사회진화론

  "약육강식, 우승열패, 적자생존 즉 경쟁이 진화의 동력이고 자연법칙... 침략, 지배의 정당화"

인간을 동물과 다시 구분  - 20세기 인도주의

 

 

1차 대전을 전후해서 인도주의가 다시 고취되는데 이것이 인류평등의 대의. 우리는 너무 상식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에는 인도인과 영국인, 한국인과 일본인이 평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인류가 불평등한 것이 정의였다. 이 불평등한 세계에서 피해와 압박을 받고 있던 한국인들이 기민하게 먼저 받아들인 것이 3·1운동이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러한 인류평등의 대의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았기에 30년 후 다시 세계2차 대전이 일어났다.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난다. 사후 평가가 어떻든 당대에는 사회주의 혁명을 계급이 없는 사회, 인류평등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1918년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약소한 민족도 스스로 자기 문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민족자결주의를 선언하는데 이것도 인도주의였다.

 

  • 인류적 양심의 발로에 기인한 세계개조의 대기운에 순응병진(順應幷進)하기 위하여

 

이것을 이해한 한국지식인들은 세계사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독립을 축하하며 총칼 앞에 맨손으로 나가 만세운동을 벌였다. 무엇을 믿고 그랬을까?

힘보다 중요한 것, 바로 정의였다. 무엇이 정의인가? 인도주의다.

 

2차 대전이 끝나고 UN이 결성된 후 가장 먼저 세계인권선언이 제정된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자유로우며 그 존엄과 권리에 있어서 동등하다

 

 

세계인권선언보다 30년 먼저

기미독립선언서에는 위 내용이 쓰인다. 총칼 앞에서 목숨을 내놓으면서 외쳤던 것이다. 이것이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이다.

UN에서는48명의 정치지도자들이 정의, 인도를 이야기했지만 한국인들은 2000만 동포가 한 마음으로 외쳤던 것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만들면서 임시헌장을 만드는데 임시헌장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 들어갔고 더욱 놀라운 것은 남녀, 귀천, 빈부에 따른 일체 계급에 따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랑스혁명으로 자유, 평등, 박애를 이야기한 프랑스에서는 1949년 처음으로 여성참정권을 인정했는데 대한민국은 1919년에 여성평등권이 임시헌장에 들어가고 1948년 제1회 제헌의회선거, 5.10총선거에서 여성이 투표를 한다.

100년 넘은 페미니즘운동 역사를 가진 프랑스 여성도 가지지 못했던 투표권을 한국여성들이 먼저 가지게 된다. 이것이 우리 헌법가치, 우리 한국인의 공동가치로 들어와 있었기 때문이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인식, 인종차별의식, 계급차별의식, 남녀차별 의식의 덩어리 속에 묶여왔던 약소민족으로써 민족 전체가 총칼 앞에서 피 흘려 외쳤던 인류평화의 대의인 정의·인도·동포애를 상징하는 기념관을 세워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의 '한' 이라는 글자는 세계최고수준의 문화국가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의 뜻을 알고 김구선생은 마음을 담아 꿈꿨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 한없이 높고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 대한민국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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