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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톡톡

[광명토박이] 오래오래 벼를 춤추게 하는 농부가 되고파

11대 토박이, 최영길 씨 마음을 알아주는 건 오직 농작물

평생 농부, 아버지 닮는 삶을 꿈꿔

  • 기자명 시민필진 김정옥
  • 승인 : 2019.05.28 15:10
  • 수정 : 2019.07.03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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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에는 대대로 땅을 지키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토박이들이 소하동 공세동 원광명 봉창골 노온사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노온사동에 살고 있는 11대째 토박이 농군 최영길(67), 김명심(62) 부부가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트는 새벽에 논으로 나가 올해 모내기 할 논흙을 고르느라 최영길 씨는 점심을 훌쩍 넘긴 2시에 집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감기에 걸려 목소리조차 내기 힘이 들어 병원에 가야했기 때문에 온 것이라고 한다. 집안에 우환이 있다며 김명심 씨의 얼굴이 어둡던 이유가 남편의 건강을 염려해서라는 것을 알았다.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자란다고 하잖아요. 사실이에요.

벼들은 내가 논 가까이 가면 반갑다는 듯

사르르 하고 미세하게 움직여요.

최영길 씨
최영길 씨

 

광명시는 농사짓기에 더없이 좋다. 인근 지역이 태풍 비바람 피해가 있어도 이곳은 신기하리만큼 비켜가곤 했다. 벼이삭이 알곡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축 축 늘어져있는 황금물결 속에서 추수 하던 손을 잠시 멈추고 맥주 한 캔 시원하게 들이키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은 농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언제까지라도 젊을 것만 같았던 최씨는 지난해 고관절 수술을 받은 후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졌다. 2만평 농사짓던 것을 절반으로 줄이며 조심하는 중이다.

 

 

최영길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을 직접 보여주었다.
최영길씨는 본인이 좋아하는 사진을 직접 보여주었다.
최영길 씨의 삶을 보여주는 진열장을 가득 채운 상패
최영길 씨의 삶을 보여주는 진열장을 가득 채운 상패

 

 

어릴 적 광명은 흙먼지 날리는 신작로에 비만 오면 물이 차서 하루에 몇 번 다니던 버스도 끊기는 곳이었다. 그는 온신초등학교를 나와 서울로 진학을 했다. 20대 초, 매형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2년 동안 영화관에서 일한 적을 제외하고, 4-H 청년 활동을 계기로 귀향 한 이래 그는 지금까지 농촌을 지켜왔다.

퇴비도 마당 한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겨우내 숙성해 쓰면서 땅에 이로운 농사를 짓는 그는 82년도, 광명시 최초로 농업 경영인이 되었다.

또 지역 일까지 앞장서 몸을 아끼지 않는 활동을 했고, 국무총리상ㆍ농림부장관상광명시민대상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상은 그의 삶을 격려 했다. 그래도 뭐니뭐니 해도 농업인으로서 가장 자랑스러운 상은 새농민 상이다.

 

 

결혼생활 40년 째, 최영길ㆍ김명심 부부 모습
결혼생활 40년 째, 최영길ㆍ김명심 부부 모습

 

 

부인과는 결혼한 지 40년 째. 그녀는 이웃집 여동생이었다. 양쪽 어르신이 형님,아우 하는 사이여서 일손 도우러 가끔씩 집에 드나들던 긴 머리 찰랑이는 열일곱 살 예쁜 아가씨가 눈에 쏘옥 들어왔다. 당시를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는 듯이 그의 코가 벌름하더니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농사짓는 집안의 며느리 첫 조건으로 일 잘하는 튼실한 체격을 우선으로 치던 시절인지라 작고, 야리야리하게 날씬한 명심 씨가 시어르신 맘에 들 리 없었다.

남편은 팔 남매의 맏이. 호된 시집살이 속에서도 그녀는 시할머니에 시어른, 시 조카까지 강단있게 대가족 15 명을 모시고 기르고 거들며 시동생들의 결혼을 돕고 독립까지 시켰다.

 

 

막내 시누이 최기영, 김명심씨의 모습
막내 시누이 최기영, 김명심씨의 모습

 

 

오빠를 병원에 모셔 가려고 왔다는 일곱째 동생 최기영 씨는

언니가 고생을 많이 했어요. 제가 어릴 때 시집 오셨으니 엄마나 진배없지요. 뒤끝 없고, 음식 솜씨 좋고 손이 얼마나 큰지 만들어서 나누길 잘 해요.”라고 말한다.

그런 시누에게고모가 내 총알받이에요. 집안일로 온갖 투정을 다 해도 말이 없이 다 받아 줘요하는 명심 씨.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속에 신뢰와 깊은 정이 흐른다.

 

김 씨는 ()농가주부모임 광명시지회 초대 회장이었다.


농가주부모임은 경기도연합회에 속한 사단법인 농가주부모임 광명시지회다. 여성 생산자의 모임으로 2002년에 60명이 결성했다.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농번기에 품앗이 일손 돕기와 애경사 챙기기 등 힘들고 바쁜 농사일 가운데도 주저 없이 마을 연중 행사를 도맡아서 하는 현재도 활발한 모임이다.


 

김명심 씨
김명심 씨

 

 

그녀는 인생 2모작을 위해 지난해부터 일산 농협 최고 경영자대학을 다니고 있다. 가공과를 거쳐 올해는 농업과 지역관광지를 연계하는 관광과다. 이제는 4차 산업을 넘어 농업이 들어간 6차 산업시대라고 한다. 농업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해마다 전통된장을 담아 판다. 김장배추는 만 포기씩 수확을 하는데, 배추를 기다리던 이들이 스스로 소금에 절여 가져가곤 한다. 이런 시도와 움직임은 어떻게 하면 내 고장 농업을 지속 가능하게 할까하는 길 찾기의 날갯짓이다.

 

 

 

 

최영길 씨는 훗날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돌아가신 지 11년이 되었는데 아버지는 오로지 농사일밖에 모르는 부지런하고 강인한 분이었다. 어려서 몸이 약했던 영길 씨가 아프면 등에 들쳐 업고 몇 십리에 있는 서울 병원으로 내달리던 아버지의 넓고 따뜻한 등을 잊을 수가 없다.

어릴 적 친구들은 도시 개발 붐을 타고 거의 고향을 떠나고광명회라는 토박이 100명이 고향을 지키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물려준 땅을 지키며 지역자원 순환 차원에서 대대로 농업을 이어간다는 뚝심 하나로 버텼다. 수확한 쌀은 일괄 농협에 판매가 돼 판로 걱정도 없이 보람되고, 재미게 일했다.

그런데 요즘은 삶의 전부인 농업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현실 앞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한 해 농사지어 생활을 할 수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지만 요즘은 그것마저 어렵다. 새로운 농기계라도 사게 되면 오히려 빚이 늘어날 뿐이다.

급속한 도시화와 밥보다 빵을 선호하는 등 변화하는 현대의 식습관이 가져다준 그늘이다. 지금은 대를 이어 농사를 짓겠다는 이를 찾기가 힘들다. 독립해 나간 그의 아들만 해도 아예 농사에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농업만이 생명이고 살길이건만...

그나마 반가운 것은 젊은이들의 귀농 소식입니다.

단 귀농을 꿈꾸는 사람은

사전에 철저한 계획을 세워야 하겠지요.

 

귀농을 결심하고 도전했다가 몇 년 못가 포기하고 떠나는 사람이 많다며 그는 안타까워했다.

함께 손잡고 사람이 사는 농업을 일구고 싶은데 말이다.

 

모내기 날을 기다리고 있는 육모
모내기 날을 기다리고 있는 육모

 

 

최근 그의 관심사는 실내농업이다. 건물 안에서 흙 없이도 식물을 재배하는 것이다. 지금 짓고 있는 땅마저도 도시개발 소문이 무성하니 앞을 준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는 누군가의 노력이 있어야 꽃 피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면 자신이 하고 싶다고 했다.

광명시에서 농촌의 활성화를 위해 로컬 푸드 정책을 오래전부터 준비하는 것 같아 그것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가 병원으로 가고 난 후 명심 씨의 안내로 집 마당을 둘러볼 기회를 가졌다.

슈퍼에 갈 필요 없이 자급자족이 가능한 수수ㆍ 참깨 들깨 가지 감자 고추 배추 부추 도라지 오이 토마토 텃밭을 지나고, 비닐하우스 안을 들여다보니 드넓은 푸르른 초원을 이루고 있는 벼 육모가 다음 주 모내기 날을 기다리고 있어 입이 딱,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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