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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인터뷰]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

  • 기자명 광명시
  • 승인 : 2011.11.29 13:28
  • 수정 : 2012.09.19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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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해설가 이지혜

“글을 쓰는 작가는 시로, 소설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죠. 작곡가는 음악으로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전하는 거에요. 신기하게도 모든 예술이 그렇듯 음악도 시대적 영향을 상당히 받아서 당시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그 색깔이 상당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작곡가 개인의 상황을 알고 나면 그 음악이 훨씬 친근하고 편안하게 다가오게 되죠. 눈을 감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 아, 이때 이 사람은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그렇게 아프고 힘든 상황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선율을 떠올렸구나 하면서 감동받는 겁니다.”

갤러리를 방문해본 사람이라면 그냥 그림을 그림으로만 바라보는 것과 큐레이터의 해설과 함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 어떤 차이를 지니는지 알 것이다. 그림에 깊은 조예가 있지 않은 이상, 큐레이터의 도움 없이 그림을 바라볼 때는 색과 선의 멋진 조화, 그 기능적인 측면에만 시선이 머물게 마련이다.

음악 읽어주는 사람, 이지혜

하지만 화가의 배경과 시대적 상황, 그림에 얽힌 에피소드 등을 알고 나면 그림에 담긴 화가의 마음이 함께 들여다보인다. 예술가가 전하는 영혼의 울림을 ‘공명’시키는 능력, 그것은 큐레이터와 클래식 해설가라는 직업이 가진 매력적인 공통분모이다. 큐레이터가 ‘그림을 읽어주는 사람’이라면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 씨는 ‘음악을 읽어주는 사람’이다.

오는 12월 8일 목요일 저녁 7시반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한손에 잡히는 오페라’를 주제로 강연할 이지혜 씨. 단아한 외모에 또박또박 차분한 어투, 다정한 목소리, 언뜻언뜻 드러나는 교양 있는 매무새까지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은 이런 ‘아우라’를 가지나 싶은 묘한 동경을 갖게 하는 사람이다. 그녀를 만나기 전에는 그저 언변 좋은 클래식 음악가 출신이 아닐까 했는데 의외로 그녀가 대학시절에 전공한 과목은 철학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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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르고 맹장이 터졌는데 미련하게 배가 아픈 줄로만 알고 그냥 참다가 복막염으로 번졌어요. 수술을 하고 병원에 누워있는 제게 아버지가 물으시더라고요. 무엇을 공부해보고 싶냐고. 역사도 공부해보고 싶고, 미학에도 관심이 있고, 심리학에도 관심이 있다고 하였는데 나중에 저 대신 원서를 넣고 오신 아버지가 철학과를 지원하셨더라고요. 너무 깜짝 놀랐죠. 아버지가 ‘철학이야말로 네가 공부하고픈 모든 학문을 아우르는 거’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땐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버님 말씀이 꼭 맞았다고 한다. 대학 다니는 내내 공부를 하는 것이 너무 즐겁고 행복했단다.

“과거 그리스시대까지만 해도 음악과 미술, 문학, 무용 등은 하나의 통합 예술이었지요. 연극무대에서 이 모든 것들이 아울러져 거대한 감정 교류가 오고 갔으니까요. 그 안에는 예술가들의 철학과 사상이 녹아있었고요.”

그녀의 말처럼 인문학과 예술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 어떤 쪽이든 삶의 희로애락, 그 깊은 통찰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차이가 뚜렷해졌다고 해서 전혀 다른 영역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철학도, 음악과 사랑에 빠지다

인문학의 즐거움에 푹 빠져 있던 그녀가 바이올린을 손에 쥐게 된 것은 아주 우연한 기회 때문이었다. 국내 경기가 급격히 나빠지면서 준비하던 유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덩달아 건강까지 악화되면서 평소 즐겨 듣던 음악에 더욱 심취하게 되었다고 한다.

“클래식을 사랑하시는 부모님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늘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었어요. 부모님은 클래식을 좋아하셨지만 좋은 오디오 시설을 갖추고 음악회를 즐겨 다니시는 쪽은 전혀 아니었어요. 어린 시절 아빠 차를 타면 늘 클래식 테이프를 들었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클래식은 일상의 소소한 것들 중 하나였지요. 어머니가 음악학원을 하셨던 것도 영향을 미쳤을 거에요. 막연히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 생각했는데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그게 그렇게 간절해지더라고요.”

스물셋 늦깎이에 취미로 시작한 바이올린이 너무 좋아져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로 결심한 이지혜 씨는 급기야 음악대학에 편입까지 했다. 하지만 빠르면 서너 살, 늦어도 초등학교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온 동급생들과 이지혜 씨의 바이올린 실력은 견줄 게 아니었다. 음악과 함께할 때가 가장 행복하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는데 바이올린을 전공하면서부터는 가장 끔찍한 것이 음악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렇게 간절하던 바이올린이 세상에 둘도 없는 스트레스가 될 줄은 몰랐어요. 스스로 너무너무 불행하다고 느꼈을 정도니까요. 가까스로 졸업은 했지만 졸업 후 몇 달간은 바이올린은 물론 음악조차 들은 적이 없었어요.”

음악이 없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몇 달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다시 음악과 마주할 용기를 냈다. 그리고,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하염없는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음악이 주는 위안과 감동에 마음을 닫아둔 채 스스로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하려 했던 스스로와 가까스로 화해한 것이다.

격식을 내려놓으면 음악은 언어가 된다

“강 연을 다니다 보면 우리 아이가 체르니 몇 번까지 쳤다던가 어떤 곡까지 마스터했다라는, 기능적인 잣대로 예술의 경험치를 평가하려는 부모님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음악은 기능이 아니라 예술이에요. 아이가 음악을 통해 얼마나 행복한가 얼마나 감성적으로 풍부해지는가가 더 중요한 거죠.”

이지혜 씨의 클래식 해설에는 언제나 인문학적 관점,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녹아있다.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작곡가, 그리고 그 곡을 연주한 연주자와 음악으로 소통한다는 뜻이다. 음악으로 말을 건네고 그 감정을 고스란히 주고받는 과정이다.

“처음 클래식 해설을 시작했을 땐 음악회에 오신 분들이 저보다 더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분들이면 어쩌나,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가진 분들이라면 내 해설이 마음에 안 둘 수도 있을 텐데 하며 걱정했죠. 그런데 의외로 클래식을 마음으로 즐기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오히려 처음부터 끝까지 박수도 치면 안되고 자세도 흐트러트리면 안 된다 하는 식의 강박에 사로잡히면 음악은 불편하고 재미없는 것이 되어버립니다.”

그녀는 주로 삼성과 한국전력, 웅진그룹, 포스코건설, 현대오일뱅크, 농협 등 대기업의 교육프로그램과 공무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프로그램, 음악회 등을 진행한다. 언뜻 음악회에서의 감상태도를 가르치는 따분하고 고루한 프로그램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그녀의 이야기 보따리는 의외의 곳에서 술술 풀어져 나온다. 역사와 문화, 정치 그리고 사랑과 배신 등 음악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아우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다 보면 그 언어는 어느새 음악가의 언어인 ‘음악’으로 옮겨져 있다.

음악에 마음을 열고, 음악의 따스함을 맞이하도록 돕는 사람
“유럽인들이 클래식을 대하는 방식은 몹시 자유롭습니다. 가볍게는 왈츠나 폴카, 알르망드 같은 춤곡을 떠올리시면 클래식이 무겁고 딱딱하다는 선입견을 조금은 떨쳐버리실 수 있지 않을까요? 유럽에서는 디인문학강좌 - 오페라 포스터너가 포함된 음악회나 음악감상을 하다 중간에 긴 휴식시간을 주는 식의 프로그램도 풍부한 편인데, 이러한 음악 프로그램들은 비즈니스에도 종종 활용되곤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골프가 비즈니스의 매개라면 유럽에선 음악이 그 역할을 하고 있죠. 비즈니스를 위한 만남이긴 하지만 당연히 이야기는 딱딱한 비즈니스 쪽보다는 문화와 예술을 중심으로 한 감성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에요. 그들에게 음악회는 지루하고 따분한 자리가 아니라 충분히 즐기면서 대화를 나누는 휴식과 충전의 자리인 셈입니다.”  

클래식의 본고장인 유럽에서조차도 클래식을 감상할 때 긴 곡을 애써 한번에 듣는 엄숙함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모름지기 음악이란, 사람을 격식에 옭아맬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듣기에 편안한 곡, 마음에 와 닿는 곡이 있다면 조금씩 한 악장씩 끊어 들어도 좋고 작은 소품곡들을 흥얼거리듯 들어도 좋다.

다만 그림을 감상할 때와 마찬가지로 작곡가에 대해, 그리고 그 곡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귀를 기울인다면 그 음악이 가진 사람 냄새, 가슴에 스미는 따스함까지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래식이 아직은 어색하고 어려운 이들에게는 당연히, 클래식 해설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클래식 해설가란 음악에 마음을 열고, 음악이 가진 따스함을 맞이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거드는, 음악여행의 즐거운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글·김지은<자유기고가>/사진·김현식<포토그래퍼>


*클래식 해설가 이지혜의 '한손에 잡히는 오페라' 강연이 12월 8일(목)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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