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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트로트왕자’ 박현빈 인터뷰(1)

  • 기자명 광명시
  • 승인 : 2011.11.29 13:56
  • 수정 : 2020.09.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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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가요계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 그 중심에 광명 출신 ‘트로트 왕자’ 박현빈(29)이 있다. 올 봄 일본에 진출한 그는 지난 9월 ‘샤방샤방’과 ‘곤드레만드레’, 두 곡을 연달아 히트시켰다. 특히 중독성 강한 멜로디와 강렬한 춤사위가 일품인 ‘곤드레만드레’는 일본 최대 유선음악채널인 유센(USEN) 차트 엔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를 11월 23일 저녁, 한 카페에서 만났다. 새 디지털 싱글 ‘모래시계’ 준비와 방송활동으로 시간을 내기 힘든 상황이었지만, 그는 “가수이기 전에 광명시민의 한 사람으로
광명시 뉴스포털과 함께하고 싶다”며 기꺼이 취재에 응했다. 박현빈은 광명시가 시로 승격한 해(1981년)인 바로 다음해에 태어나 지금도 광명에 살고 있는 광명 토박이. 이날 인터뷰 중간 중간에 뜨거운 ‘광명 사랑’을 표현하기도 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트로트가수 박현빈


-그동안 새 앨범 준비하느라 바빴죠?
“이달에 새 음반이 나올 수 있도록 작업을 서두르느라 정신없이 바빴어요.”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 ‘모래시계’가 발라드곡이라고 들었어요.
“발라드를 처음 시도하는 거라 새로운 느낌이에요. 심연을 파고드는 절절함을 표현하려고 수십 차례 녹음과 수정 작업을 거쳤어요.”

-대학(추계예술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했던데 어쩌다 트로트 가수가 된 건가요?
“클래식 공부할 때도 트로트에 관심이 많았어요. 부모님이 음악을 하시니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대중음악을 들으면서 자랐거든요. 부모님이 젊을 때 힘들게 음악을 하셔서 그런지 가수의 길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진 않으셨어요. 아버님은 색소폰 연주가로 활동하셨고, 어머니는 건반을 치면서 직접 노래를 부르셨죠. 어머니는 지금도 노래 강사로 전국을 누비고 계세요.”

-인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닌 것을 빼고는 계속 광명시에서 살아 광명시에 대한 추억이 많을 것 같아요.
“저의 모든 추억이 광명에 있어요. 광일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광명시가 허허벌판이었어요. 아무것도 없었죠. 학교랑 문방구, 조그만 슈퍼가 다였고 차도 별로 없었어요. 겨울이면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스케이트를 타곤 했죠. 그땐 스케이트장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가장 편하게 만나는 사람들이 광명시에서 함께 자란 어릴 적 친구들이에요.”

박현빈 인터뷰 사진-초등학교 때는 어떤 아이였나요?
“특출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활달하고 운동을 무척 좋아했어요. 음악은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했으니까 학교 행사가 있으면 항상 대표로 나가 노래를 불렀어요. 장기자랑 하면 바이올린 연주도 하고요. 그냥 평범한 아이였죠. 나서는 것 별로 안 좋아하는.”

-성악을 하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면서 발성을 바꾸느라 애를 먹었겠네요.
“많이 힘들었죠. 클래식은 반주 자체가 없고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잖아요. 발성과 호흡을 아주 체계적으로 훈련해야 하고요. 그런 데 익숙해 있다가 대중가요의 한 장르인 트로트를 하려니까 녹음할 때도 어려움이 많았고, 마이크로 소리를 내는 것도 어색하더라고요. 트로트에는 클래식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교가 필요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죠.”

-데뷔 준비 기간이 오래 걸렸나요.
“느낌을 잡는데 시간이 좀 걸렸지만 음악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적응하기가 수월했어요. 30개월 동안 군 생활을 할 때도 군악대에서 계속 대중음악을 했어요. 군대에서 트로트를 많이 불렀고, 이후로도 쭉 대중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었어요.”

-트로트 가수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나요.
“무대에 올라가는 것이 너무 힘들 때는 ‘아, 죽겠다’라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트로트로 전환한 것을 후회한 적은 한번도 없어요. 왜냐하면 부모님이 행복해하시고 광명시민들뿐 아니라 주위 모든 분이 기뻐하시니까 좀 힘들어도 보람을 느껴요. 돈을 못 벌고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 때도 제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었어요.”

-2006년 ‘빠라빠빠’라는 곡으로 데뷔하기 전에 광명시민노래자랑에 나갔었다면서요.
“8년 전쯤일 거예요. 광명시민노래자랑이 시청에서 열렸죠. 동네 어르신들이 음정, 박사 무시하고 재미로 노래하는 무대여서 나름 자신이 있었는데 미끄러졌어요. 그때 얼마나 기분이 상했는지 몰라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노래를 다 들어봤거든요(웃음). 나는 전문가고 클래식음악을 20년을 했는데 떨어진 것이 믿기지 않아 확인 전화를 세 번이나 했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발판이 됐을 수도 있어요. 악한 마음을 먹지 않고 내가 대중적이지 못하거나 가요를 못해서 떨어졌구나보다 생각했거든요. 그 뒤로도 왕십리가요제라는 큰 대회를 나갔었는데 그때도 낙방했죠.”

-일본에서는 엔카 부문에서 1등을 했잖아요.
“기분 좋아요. 학교 다닐 때도 1등을 한번도 못해봤거든요. 하하하. 일본에서 활동한지 아직 1년이 채 안 됐는데 다행히 ‘샤방샤방’과 ‘곤드레만드레’가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도 알리기가 쉽지 않은데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이 제 노래를 따라 부르게 하려면 10배 이상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려고요.”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나요?
“계속하고 있죠. 국내뿐 아니라 일본에서도 행사를 많이 다녀요. 이벤트를 진행하면 혼자 30분 정도 멘트도 하고 사람들과 대화도 나눠야 하니 언어는 필수죠. 아직 리얼 버라이어티쇼에 출연하기에는 버거운 단계이기 때문에 일본어 공부를 틈틈이 해요. 시간 날 때마다 일본어를 익히고 개인지도도 받고 있어요.”

-현재 실력은 어느 정도인가요?
“일본어 공부를 한지 아직 1년이 안 됐어요. 일본에 진출한 후에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말을 다 알아듣긴 해요. 의사표현은 아직 미흡하고요.”  

-한국가수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지금은 일본 진출이 활발해져서 ‘한국가수가 너무 많이 들어왔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예요. K-POP 열풍이 대단하잖아요. 전 한국에서든 일본에서든 아이돌 그룹과는 차별화된 음악을 해서 어르신들, 어머니들이 예뻐해 주세요.” (기사 계속)

더 보기 > [인터뷰] 광명이 낳은 ‘트로트왕자’ 박현빈(2)

 

 

 

 

글·김현 연예칼럼리스트/사진·김현식<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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