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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톡톡

"광명시는 행운의 도시, 요성시와 튼튼한 가교 놓을게요"

  • 기자명 시민필진 홍선희
  • 승인 : 2012.01.17 10:25
  • 수정 : 2012.09.18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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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멍과 정지연 씨


“우리 멍이는 저희 팀의 피로회복제이자, 시민들의 든든한 심부름꾼이었는데, 이제 멍이 없이 무슨 재미로 살죠?”

바로 옆 자리에서 뤼멍 씨와 9개월여 함께 근무해온 정지연 주무관은 벌써부터 허전한 기분이 든다. 광명시 자치행정과 민간협력팀원들에게 ‘멍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뤼멍(29) 씨. 중국 산동성 요성시 공무원인 그는 지난해 4월 광명시에 파견돼 지금까지 근무했다. 그리고 1월 19일 그 임무를 모두 마치고, 이제 본국으로 돌아간다.

뤼 씨와의 작별을 앞두고, 그의 팀원들은 서운함과 아쉬운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뤼 씨는 그동안의 다른 파견 중국 공무원들과는 달리, 유창한 한국어 실력을 앞세워, 팀원들을 항상 웃게 했다. 또 180cm가 훨씬 넘는 키에 큰 덩치를 내세워, 사무실의 각종 궂은일과 잡다한 심부름까지도 먼저 나서 거들곤 했던, 든든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뤼 씨와 한국의 인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던, 지난 2003년 한국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고향인 요성시에서 외국인 투자유치 공무원으로 활동했던 아버지가 적극적으로 권해서였다. 뤼씨의 아버지는 한국 기업가들과 접촉을 하면서 자신이 먼저 한국의 매력에 빠졌다. 그래서 아들이 더 많은 것을 배워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망설임 없이 외아들을 낯선 땅에 보낸 것이다.    

외동아들 뤼멍 씨, 아버지 권유로 '한국에서 보낸 20대'

김치찌개를 맛있게 먹는 뤼멍 씨그때 뤼 씨가 한국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북한 아래쪽에 있는 나라라는 것, 올림픽을 치렀다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처럼 한국은 뤼 씨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끼게 해 주었다. 대학진학을 한국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고, 2003년부터 2년이 넘게 서울 성균관대학교 외국어학원에서 한국어를 배웠는데, 지금도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저보다 두세 살 위의 형 누나들이 저를 아빠처럼, 또는 엄마처럼 돌봐줬어요. 감기에 걸렸을 때는 유자차도 끓여주고, 약까지 챙겨줬어요. 그때 한국인 특유의 ‘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고, 저도 모르게 그 끈끈한 정에 빠져 들어, 한국 마니아가 되고 말았죠.”

워낙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인지라, 뤼 씨는 청주대학교에 다니던 생활도 모든 게 즐겁기만 했다고 추억했다. 한국 대학생들도 꺼린다는 일명 ‘막노동’ 아르바이트까지도 해봤다.

“부모님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 싶은 마음에, 일당이 많다는 건설현장에서 일주일동안 일을 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사실 그때만 해도 한국어가 서툴렀던 저로서는 그저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해보겠다는 각오로 도전했는데, 덩치가 커서 그런지 무거운 짐을 많이 날랐어요. 진짜 고되더라구요.”

그의 한국어 실력이 지금처럼 유창하게 된 것은, 이곳저곳에 두려움 없이 도전해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을 쌓고, 한국 친구들과 끓임 없이 수다를 떤 덕분이라고 한다.  

한국어 특채자로 요성시 공무원 되다

뤼 씨는 대학 졸업 후인 2009년, 고향인 중국 요성시로 돌아가, 그곳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가 맡은 일 역시 그의 아버지처럼 투자유치 관련 업무였다. 중국에서도 공무원의 인기가 하늘을 치솟아 무려 평균 1천대 1에서 1만대 1의 경쟁률을 보이지만, 뤼멍  씨는 뛰어난 한국어 실력 덕분에 외국어 특채자로 공무원에 임용됐다. 그는 중국에서도 한국 기업가들을 자주 만나며 한국에 대한 끈을 놓지 않게 됐다. 기회가 다시 왔다. 광명시와 요성시가 2009년부터 교류사업의 일환으로, 서로 공무원을 파견해 근무하게 하는 것을 알고, 기꺼이 나서게 된 것이다.  

“제 20대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더 많아요. 스무 살 이후 중국에서 생활한 것은 2년 남짓이거든요. 그래서 한국이 남의 나라 같지 않고, 정말 익숙하고 편안합니다. 이젠 김치찌개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됐을 만큼 못 먹는 한국 음식이 없고, 전국 각지에 제 한국인 친구들도 꽤 많답니다.”

광명시에 근무하면서 그는 참 많은 경험을 했다. 특히 자매결연 도시인 광명시와 요성시의 각종 민간교류 사업에 참여해 통역과 안내를 맡으며, 두 도시의 가교 역할을 했다.

요성시 심장병 어린이 초청해 수술시 '아름다운 통역' 가교

그 중에서도 그의 기억에 남는 것은 광명시가 요성시의 심장병 어린이를 초정해 수술해 주는 사업에 함께 했던 일이다. 대상자 선발을 위해 중국 현지 병원을 찾아, 어린이 보호자와 한국 의료진 사이에서 통역을 하며, 가슴 아픈 순간도 많았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자식을 치료하지 못하고 애만 태우며, 아이가 언제까지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부모의 말을 통역해야 할 때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요. 그래도 냉정을 되찾고 말을 옮기긴 했지만, 순간 울컥했어요. 또 이들에게 새 생명을 얻을 기회를 주는 광명시에게 요성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저 역시 깊은 고마움을 느꼈어요.”

뤼 씨는 지난 6월부터 시작한 봉사활동도 보람되고 재미난 일로 꼽았다. 1주일에 한 번씩 소하2동 주민센터로 나가, 주부들로 구성된 중국어 학습 동아리에서 회화 지도자로 3시간씩 수업을 이끌었다. 능수능란하게 한국어를 구사할 할 뿐만 아니라, 젊은 세대답게 한국의 최신가요와 유행어까지 섭렵하고 있어 동아리 회원들 사이에서 그는 인기 만점이었다.

“요즘 노래 중에서는 남성 6인조 아이돌 그룹인 비스트의 ‘픽션’을 즐겨 불러요. 또 카라와 f(x)등 댄스 걸 그룹의 팬이기도 하고요. 제가 원래 적극적이고 활발해서 춤추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춤을 잘 추는 가수들을 보면 저절로 몸이 들썩거려요.”
    
한국에 파견 나온 직후 결혼을 해 오는 7월 아빠가 되는 뤼 씨. 남편 덕분에 지난 가을 한국에서 한 달 가량 머물렀던 그의 아내 역시 한국의 매력에 푹 빠져 부부가 ‘일심’이 됐다는 게 뤼 씨의 귀띔이다.

"요성시에 돌아가서도 광명시를 항상 응원할게요"

 

광명시에서 정든 동료, 선배들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아내가 제주도의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지금까지도 얘기를 해요. 아마도 제가 본국에 돌아간 뒤에도 종종 한국에 놀러 나오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뤼 씨는 광명에서 많은 선물을 얻어간다며 광명은 자신에게 ‘행운의 도시’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했다.뤼멍 씨

“광명에 온 뒤 잠시 본국에 휴가를 갔을 때 지인의 소개로 아내를 만나 첫 눈에 반해 결혼을 했습니다. 그토록 바라던 아이도 갖게 됐고요. 이곳에서 근무하며, 많은 공무원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에게서 자신의 도시를 사랑하는 열정과 시민들을 향한 청렴한 봉사정신을 배웠어요. 또 외형적으로는 경직돼 보이지만 격의 없이 소통하고, 가족처럼 서로 챙기는 조직문화는 때로는 감동적이기까지 했어요. 이것은 제가 앞으로 본국에서 공무원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신혼생활도 반납한 채 보내게 된 광명에서의 9개월이 어느덧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뤼 씨가 광명에 쏟는 애정과 관심은 이미 ‘원조 광명인’ 수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학광산, KTX 광명역, 경륜장 등 광명에는 도시를 발전시킬 수 있는 무궁무진하고 다채로운 자원들이 산재해 있는 것 같아요. 이를 토대로 광명시가 더욱 성장하기를 항상 응원할 것입니다. 제가 본국에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광명시 홍보대사 한 사람이 요성시에 장기 파견나간다고 생각해 주셔도 될 것 같아요.”

뤼 씨에게 더 이상 국경의 벽은 느껴지지 않는다. ‘중국말을 잘하는 광명 사람’이라도 해도 틀린 말이 아닐까 싶다. 저 바다 건너 대국에 영원한 우리 편 한 사람을 보낸다는 기분에 섭섭함보다는 뿌듯한 마음이다.  
  뤼멍 씨 인삿말


글·홍선희<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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