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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인생노트, 인생을 기록하다 (well-dying is well-living)

  • 기자명 우리마을기자단 박갑순
  • 승인 : 2022.07.15 16:10
  • 수정 : 2022.07.15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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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내가 인기가 있었어요.”
아담하고 다부지게 생긴 94세 어르신께서 들려주신 말씀 중 흐뭇하게 오래 마음에 남은 말이다. 겉모습은 세월을 거스를 수 없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시간을 거부할 수 있는 것 같다. 

 

 

더위가 최고점을 갱신하던 날, 선배 ‘어르신 인생노트’ 서포터즈를 따라 광명7동에 사는 어르신을 찾아뵈었다. 어르신은 빌라 2층에서 혼자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도 하며 생활하신다. 기운이 없어 더운지도 모른다면서 조끼까지 갖추어 입고 맞아주셨다. 선배 서포터즈는 오늘이 어르신과 세 번째 만남이라며, 어르신께서는 오늘이라도 죽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지만 내면은 남은 인생을 외롭지 않게 더 오래 살고 싶은 간절함이 담겨 있음을 느낌으로 안다고 했다.

누구라도 피해갈 수 없는 인생의 한 과정인 죽음. 살아서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쉽지 않다. 위암과 유방암 판정을 받고 지난한 투병의 시간을 보냈던 필자마저도 죽음이 내 몫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언젠가는 닥치겠지만 막연한 일이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한부 판정을 받았을 때마저도 죽음을 피하려고 전신으로 거부하는 지독한 항암제를 투여하며 발버둥친다. 가족들의 간절함이 보태져서 마지막까지 독한 약에 지배당하고, 중환자실에 갇혀 지내다 외롭게 삶의 끈을 놓아야 하는 일이 현명한 일일까.

우연한 기회에 하안노인복지관(관장 김정은)에서 진행하는 ‘어르신 인생노트’ 서포터즈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죽음이라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단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고 내 삶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인생 그래프, 사진으로 쓰는 자서전 등의 교육 과정을 거치면서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시간도 가졌다. 나의 사망기와 묘비명 쓰기, 사전장례의향서, 유언장 등을 작성해 보면서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는 법도 체득했다. 그리고 남은 나의 삶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다시 한번 계획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인생의 험난한 파도를 넘어온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은 된다고 말한다. 누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 기쁘고 행복한 순간들과 슬프고 후회 가득한 일들이 더께더께 엉겨 있기 때문이리라. 

하안노인복지관에서 시행하고 있는 ‘어르신 인생노트’는 광명시 노인복지기금으로 진행하는 사업으로, 죽음에 대한 부정적 감정과 불안을 감소시키고, 노년의 삶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함양하여 노년기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사업이다. 또한, 삶에 대한 정리와 미래준비를 통해 건강하고 가치 있는 노년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웰다잉 문화 조성에 목적이 있다.

이 사업은 서포터즈를 양성하여 광명시에 거주하는 독거 어르신과 1:1 멘토링으로 노인의 의미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공유한다. 웰다잉 프로그램을 통하여 가치 있는 노년의 삶을 추구하고 인생노트라는 작은 자서전 쓰기로 노년기 성취감 향상을 도모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

 

 

 

‘어르신 인생노트’ 서포터즈 양성 교육 1기는 3월부터 모집하여 소정의 교육 과정을 마치고, 어르신들과 직접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기는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모집하여 현재 교육 중이다. 
 
한편, “어르신이 행복한 광명시”를 만들겠다는 시정 방침에 따라 진행하고 있는 광명시 어르신 관련 정책은 어르신 참여 행정, 지속 가능 돌봄 확대, 풍요로운 노년 생활 3개 분야 45개 사업이 있다. 그중 노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어르신 인생노트’ 사업을 신규로 추진하고 있다.

 

 

 

‘어르신 인생노트’ 사업은 지난해 노인복지과에서 진행한 웰다잉 정책제안 및 인식개선방안 연구용역 결과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웰다잉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광명시 총예산 6,000만 원으로 공개모집을 통한 3개 기관(소하노인복지관, 하안노인복지관, 대한노인회)을 선정하여 진행 중인 사업이다.

이 사업은 두 가지 방법으로 진행한다. 서비스 대상자가 기관을 방문하여 실시하는 기관 프로그램형 방법과 기관 방문이 어려운 어르신을 대상으로 1:1 멘토링을 통해 서포터즈가 직접 방문하여 진행하는 방법이다. 해당 기관의 형편에 맞는 방법으로 독거노인의 죽음 불안을 해소해 드리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12시가 넘어가니 어르신의 휴대전화가 시장기를 못 참는 아이처럼 울려댔다. 노인정에서 점심 드시러 오라는 신호란다. 우리 집에 온 손님 차 한잔 대접 못 해서 미안하다며 어르신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오토바이에 시동을 거는 어르신은 순간 80대로 돌아간 듯 보였다. 미끄러지듯 골목을 빠져나가는 어르신의 뒷모습에서는 집 안에 드리워진 퀴퀴한 고독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어르신께서 죽음을 스스로 미리 준비하여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남은 생을 더 의미 있게 지낼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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