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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교직생활, 수묵화로 보람되게 마무리 할 거예요”

  • 기자명 광명시
  • 승인 : 2012.03.27 14:20
  • 수정 : 2020.09.11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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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란 교장
최백란 교장

한쪽 벽면을 채운 한 폭의 산수화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다. 출입문도 동양화로 꾸민 부채를 발 위에 걸어 꾸몄다. 꽃을 피운 난이 심겨져 있는 화분 역시 팔도강산의 한 곳을 그려 넣어 곱게 단장했다. 심지어 명함에 까지 한국화가 담겨 있으니, 전통미술을 향한 그 열정과 사랑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교장실 벽면의 수묵화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 어느 날 안현 초등학교 교장실. 최백란 교장이 먹과 그 향이 잘 어울릴 것 같은 녹차 한 잔을 내어준다. 첫 모금은 쌉쌀하지만 마실수록 구수하고, 넘길수록 자꾸 입맛이 당기는 녹차처럼 한번 빠지면 그 매력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게 바로 ‘먹의 위력’이라고 최 교장은 말한다.
 
“처음 서예로 먹을 만나게 됐죠. 그러다가 사군자를 그렸는데, 너무 심심하더라고요. 좀 더 화려하게 표현할 수 있는 한국화로 눈을 돌려 아예 전공을 하게 됐어요. 하지만 화선지에서만 만나는 수묵화는 재미없어요. 제가 대학원 졸업 때 논문으로 쓰기도 했는데, 생활 속에 먹이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우리 전통 미술을 계승하고, 가꿔가는 궁극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최 교장은 그래서 생활도자기와 각종 생활 소품에 먹을 활용하는 것은 물론, 면봉이나 막대기로 먹물을 찍어 그림일기를 쓰는 등의 기발한 아이디어들을 미술교육에 접목했다.
수묵화란 단지 재료가 ‘먹’일 뿐이지, 그 표현기법에서 한국화와 서양화의 경계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붓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수묵화를 그릴 수 있어요. 면봉으로 색칠해도 되고, 종이를 뭉쳐 찍어내는 기법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있고, 나뭇가지로도 선을 그리거나 점을 찍을 수도 있죠. 또 촛농을 화폭에 떨어뜨린 후 그 위에 붓으로 먹의 농담을 조절해 색칠하는 등 흥미로운 기법들이 많아요”
 
수묵병풍최 교장은 자신이 교직 생활을 하는 내내 항상 미술교육에 수묵화를 연계했었다
. 평교사 시절에는 자신의 반 아이들을 위주로 수업을 하면서, 동료 교사들을 위한 연수도 틈틈이 맡았다.
 
그러다가 교장이 되면서 부터는 자신이 머무는 학교에서 만큼은 모든 학생이 수묵화를 그리고, 먹을 다룰 수 있도록 앞장서서 지도했다. 뿐만 아니라 모든 학교 행사나 학사달력에 까지 학생들의 작품을 활용하는 등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한 방법 찾기에도 골몰한다.
 
“대부분 학교들이 학교 운동회 때 만국기를 달아 놓는데, 저희 학교는 아이들이 꿈과 희망을 그리고, 글씨로 적은 ‘꿈국기’를 제작해 하늘에 펄럭이게 해요. 또 학년 초에는 학사일정을 담은 달력을 제작해 학부모에게 배부하는데, 여기에도 학생들의 수묵화가 들어가요. 각 월에 어울리는 주제를 정해 신청자들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우수작품을 달력에 수록합니다. 1년 내내 자신의 작품이 실린 탁상 달력을 보는 게 아이들도 즐거운지, 뜨거운 관심을 보여요.”
 
최 교장은 사실 광명과 인연이 깊다. 평교사 시절을 포함해 그의 교직생활 절반 가까이를 이곳에서 보냈다. 그래서 교장 승진 직후 안산에서 근무를 하다가, 자청해서 4년 전 광명으로 옮겨 왔다.
 

안현 초교 부임 첫 해인 2년 전에는 이렇다 할 외부 지원이 없어, 수묵화 교육을 하는 게 좀 힘들었다. 그래도 최 교장을 말릴 수는 없었다. 자신이 수업하는 학부모 수묵화 교실의 수강료 전액을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비품과 집기를 마련하는데 투자했다.
 
지난해부터 혁신교육지구 사업과 문화예술거점학교 사업에 예산이 지원되면서 학생들에게 재료를 부족함 없이 지원할 수 있게 됐고, 다양한 학습 교재와 교사들을 위한 교육교재도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도 ‘수묵화 교실’의 학부모들에게 수업료는 받는다.
 
“3개월에 8만원인데, 이 가격은 거의 20년 이상 동결된 가격이에요, 마음 같아서는 재능기부를 하고 싶은데, 그러면 공짜라는 생각에 수강생들의 배움에 대한 절실함이 덜 할 것 같아 돈을 받고 있어요. 그래야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나올 것 아녜요!”
대신 그는 이런 강사료 등은 전액 학교 발전기금이나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고 있다. 올해도 졸업생 5명에게 30만원 상당의 교복을 지원했다.
 
수묵 부채최 교장의 열정은 국경도 넘었다. 지난 2010년 겨울 안현 초교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하얼빈 동력 조선족소학교를 방문할 당시, 직접 만든 스케치북 화첩과 재료들을 챙겨가 그곳 학생 40여명에게 수묵화를 가르쳤다. 그 뒤 지난해 5월 조선족 학생들이 안현 초교를 방문했는데, 최 교장이 건네준 화첩의 남은 페이지들을 수묵화로 마저 꽉 채워 온 것이다.
 
“잠깐이지만 제게 수묵화를 배운 기억을 잊지 않고, 제가 떠나온 뒤에도 수묵화를 그려 한국에 올 때 가져왔더라고요.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 작품 가운데 우수작을 뽑아 시상도 했어요”
 
바쁜 업무 와중에도 2주에 한 번씩은 학생들의 화첩을 가져다가, 직접 작품을 훑어본다는 최 교장. 혹 선생님이 지도 과정에서 빠뜨린 부분이 있으면 짚어주기도 하고, 재능과 소질을 보이는 아이들을 미리 점찍어 뒀다가, 대회 출전을 권유하기도 한다.
 
“저희 학생들은 미술대회에 나가면 하나같이 수묵화를 그리더라고요. 평소 학교에서 접해본 분야라 그런지, 아이들도 두려움 없이 도전해요. 입상 성적도 꽤 좋아요. 지난해 광명 학생미술대회에서 최우수상 등 38명이나 상을 받았거든요.”
안현 초교의 수묵화 교육이 최 교장의 퇴임 후에도 지금처럼 이뤄질지 모르지만 최 교장은이미 충분한 보람을 느낀다.
 
“지금 먹을 다뤄본 아이들은 자라서도 우리 전통미술을 친근하게 대할 것이고, 더 나아가 그 재능과 끼를 살려 세계적인 한국화 작가가 될 지도 모르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성과 아닌가요?”
 
한 밤중이나 주말이 되어서야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갖는다는 그. 때로는 피곤하고 지치기도 하지만, 정년 이후 추호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기 위해 오늘도 먹물에 붓을 적신다.

 

 

 

<글 : 홍 선 희 전문기고가/ 사진 : 광명시청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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