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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절대 어렵지 않아요!

  • 기자명 시민필진 홍선희
  • 승인 : 2012.06.04 17:48
  • 수정 : 2012.09.18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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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고전이라고 하면 매우 어렵고 고리타분한 책이라고 여기기 쉽다. 영어에 익숙한 요즘 세대에게는 마냥 낯설기만 한 한자투성이 일 것이라는 선입견이 고전에 대학 벽을 더욱 높게 한다. 하지만 이런 벽을 넘어, ‘고전은 절대 어렵지 않다’고 입을 모으는 학생들이 있다. 

안서중학교 고전 독서 토론회 동아리인 ‘온고지신’회원들이 바로 그들. 동아리 이름처럼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깨닫는 과정은 상상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이 동아리 회장을 맡고 있는 3학년 현은비 양은 “생활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다르지만, 옛날 사람들도 우리들과 똑같은 고민을 했다는 점에서 뭔가 통하는 느낌이 들어 신기할 때가 많다”며 “그들의 삶의 철학이나,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방식을 통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를 깊이 공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서중의 온고지신은 광명시의 혁신교육지구 사업의 교과학습동아리 지원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지난해 처음 만들어 졌다. 이 학교에서 한문과목을 가르치는 조춘애 교사가 지도교사로 나섰다. 

 

 

일찌감치 국·영·수를 중심으로 한 입시공부에 몰두하는 학생들에게 한가하게 고전수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학원 다니기에도 벅찬 아이들을 붙잡고 교과서 밖의 고전을 얘기한 다는 것 자체가 딴 세상 이야기로만 들릴 뿐이다.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랜 동안 대중에게 읽혀지고, 전해 내려 온 고전들은 그야말로 지혜의 보고라는 게 조교사의 설명. 당장 시험에 나오지는 않지만 고전을 읽으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깊이 통찰하는 기회를 갖는 것 자체가 아이들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아이들이 주도적으로 나서, 자신의 진로와 인생의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 교사는 믿었다.

아울러 조 교사 개인적으로도 아이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할 수 있는 공통의 화두를 갖고 싶다는 바람도 있었다.

 지난해 100만원의 예산지원이 확정되면서, 일단 회원모집이 시작됐다. 고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처음에는 학생들의 반응이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별 수 없이 조 교사가 나서 평소 자신을 잘 따르거나, 한문 수업 시간에 두각을 모였던 몇몇 학생들을 하나씩 설득해 12명을 모았다.  

 동아리 운영은 매월 3~4차례 방과 후에 함께 모여 정해진 책을 미리 읽고, 감상문을 써와 돌아가며 발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책은 조 교사가 추천했다. 지난해에는 ‘뚱보 내 인생’과 같은 소설부터 열하일기, 사기열전, 산월기와 같은 동양 고전, ‘생각한다는 것’과 같은 청소년 철학 입문서 등 8권 내외의 책을 읽고 토론을 했다. 분량이 많은 책을 서너 차례로 나눠 토론을 진행했다.

 조 교사는 감상문을 쓰는 과정에서 학생들이 메모를 통해 생각을 정리하고, 자신이 느낀 주제의식을 중심으로 창의적으로 생각을 펼쳐나가는 연습을 하게 했다. 또 모임시간에는 발표한 감상문 중에 1~2개의 주제를 학생들이 직접 선정하고, 사회자와 기록자를 정해 토론을 했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각도에서 해석한 감상문을 직접 써보고, 발표하는 시간은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것은 물론, 자신감과 성취감까지 안겨줬다.

 3학년 양진경 양은 “원래 역사 분야는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고전을 접하면서 중국이나 동양 역사에 대해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다”며 “특히 많은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내 생각을 자유롭게 발표하고, 질문과 답변을 통해 친구들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과정은 자신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한다”고 했다.

 그동안 미처 몰랐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커진 것일까. 선생님이 없어도 학생들 스스로 수업이 끝나고도 늦게까지 자발적인 모임을 갖기도 했다. 여름방학 모임에도 단 한명의 결원 없이 전원 출석을 하는 등 학생들의 열의에 점점 불이 붙기 시작했다.
급기야 사기열전을 패러디한 단편영화 ‘자객열전’까지 직접 제작해 지난해 10월 학교 축제 때 전교생 앞에 선보였다.


 영화 시나리오 작성부터, 촬영, 의상과 소품 대여 등 모든 것을 온고지신 회원들이 직접 나서 해결했다.

 의상과 소품을 빌리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 대여업체를 물색하고, 서울 강남까지 학생들 스스로 물어물어 찾아가, 짐을 나눠 등에 지고 왔다. 또 등장인물에 비해 준비된 배우가 부족하다 보니, 1인 다역을 소화해야 하는 것은 물론, 사극에 적당한 장소를 섭외하느라, 학교 운동장과 주변 대나무 숲속까지 다 뒤지고 다니는 생고생을 하기도 했다.

 산속에서의 결투 장면 촬영을 마지막으로 남겨 놓고 겪었던 에피소드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다. 조 교사의 승용차를 얻어 타고 하안동 도덕산까지 와서 부족한 조명을 휴대폰 플래시로 대체해 가며 겨우겨우 촬영을 마쳤던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완성하고, 전교생 앞에 자신들의 영화가 상영되던 그날의 감동을 학생들은 아직도 잊지 못한다.

 3학년 오세준 군은 “처음에 영화제작을 하겠다고 계획했을 때 ‘설마 될까?’라는 의구심이 많이 들었는데, 막상 우리 작품이 600여명 앞에 선을 보이게 되자, 말로 다 할 수 없는 뿌듯함이 밀려왔다”며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구상하고, 제작하는 그 모든 과정이 나에게는 학교 생활의 또 다른 재미였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내친김에 영화제작 동아리까지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하니, 아이들의 상상력과 기발함이 제대로 탄력을 받은 느낌이다. 

 올해 역시 120만원의 예산을 지원돼 온고지신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주로 동양 고전을 많이 다뤘다면, 올해는 서양고전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 갈 참이다. 아울러 다양한 철학서와 ‘모모’와 같은 쉽게 읽을 수 있고, 토론의 소재가 다양한 소설들을 아이들에게 소개해 주고 싶다고 조 교사는 말했다.

그는 “ 지난해에는 당초 계획했던 문집 간행을 미처 하지 못해 아쉬움으로 남았는데, 올해는 꼭 이를 해보고 싶다”며 “이런 문집과 토론시간에 발표된 작품, 동영상 들을 부모님들에게 선보이는 일종의 ‘종강 문화제’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스로 탐구하고, 나아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온고지신 학생들. 그들의 생각이 올해 역시 한 뼘 자라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올해 안서중 축제 때는 과연 어떤 작품으로 기대에 부응할 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글 : 홍선희 전문기고가/ 사진 : 광명시청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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