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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게으른 공터, 야생화 군락지로 태어나다.

하안동 13단지 홍순갑 씨

  • 기자명 광명시
  • 승인 : 2012.10.17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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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에서 내려 바라다 본 아파트 사잇길은 한적하기만 했다. 그 길을 따라 얼마 간 걷다보니 과연 꽃동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봄 ․ 여름 제법 화사하게 피어났을 법한 야생화들이 가을이라는 시간 앞에서도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다니, 도도한 야생화들을 대충 세어보니 한 50여종은 족히 되어 보인다.

호랑가시, 낙산홍, 풍년화, 로베리아, 홍매, 한라용담, 해변국화, 여우꼬리... 처음보는 이름들이 태반이다.

 

하안13단지에 살고 계신 홍순갑(50세)씨를 만난 건 이 때 쯤이다. 푸른빛의 개량한복에 멋들어지게 턱수염을 기른 중년의 그 분, 신기한 듯 야생화 무리에 정신이 팔려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있는 나를 향해,“혹시 가져가고 싶은 꽃 있으면 말씀을 하구려, 꺾지는 말구..., 이 꽃은 로베리아라는 꽃인데 어느 화훼단지를 가도 보기 힘든 귀한 꽃이지”하는 것이 아닌가, 내 직감으로 혹시 이분이 하안 13단지 안에서 이 야생화를 가꾸시는 분이 아닌가 싶어 여쭤보았더니 바로 그 분이란다.

이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내가 광명시로 이사를 온 지가 한 4년 되었나요. 그런데 이곳 생활을 하다보니 이 주위에 살고있는 대부분이 정부에서 생활비를 보조받는 기초생활수급자거나 아니면 환자분들 이더라고. 물론 나도 건강이 않 좋은 상태였지. 그래서 나를 포함한 이런 사람들을 양약으로 치료하는 방법도 좋긴 하지만, 자연속에서 정서적으로 치료를 한번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꽃을 가꾸기 시작했지.

이 아파트라는 곳이 참 답답한 곳이거든요. 농촌지역처럼 서로 이웃간에 허물없이 찾아가서 막걸리 한잔 먹으며 가슴속 답답한 이야기들을 툭 터놓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하나, 그래서 그 때부터 내가 산으로 들로 다니며 야생화 씨를 받아다 이곳에 뿌리거나 새벽에 열리는 화훼공판장을 돌며 직접 구입해서 심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쓰레기더미 가득한 아파트 공터에 야생화 군락지를 만든다는 건 생각만큼 그리 만만한 것은 아니었다. 자갈을 골라낸 자리에 땅을 일구고 거름을 뿌리고 구덩이를 파서 꽃을 심어놓을라 치면 어느새 뿌리째 뽑혀나간 그 자리에는 들쥐가 파헤쳐놓은 듯한 흙 무덤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사실 “내가 굳이 내 몸 힘들고 내 돈 들여가며 이런 일을 할 필요가 있을까?”하여 도중에 포기하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행여 꽃을 뽑아 집으로 가져가서 잘 키우기나 하면 다행이다. 더욱 속상한건 뽑았다가 집으로 가져가지도 않고 그냥 길바닥에 내 팽개쳐져 버려진 것을 볼 때다.

4년여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면서 홍순갑씨의 이런 노력들이 아파트 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주민은 물론이고 인근 아파트형 공장 근무자들도 점심시간과 휴게시간을 이용해 구경을 오면서 이 군락지를 보호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아파트관리사무소에서도 홍순갑씨의 이런 노력을 알고 적극 협조해 준 덕에 조만간 이 꽃동산 둘레에 보호휀스를 설치해 줄 것이라고 한다.

이 일을 하시면서 제일 보람되었던 일이 있으셨는지요?

“한번은 휠체어를 타고 나오신 어르신이 한참을 구경하다 가시는 걸 보았는데 그 후로도 몇 번 그 분 모습을 봤어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드신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자연을 느끼며 호흡하게 해 줄 수 있다는 것, 앞서 말씀드렸지만 양약치료도 좋지만 이런 자연치료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저는 자연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죠.”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일이 있으신가요?

“ 지금 여기 야생화 군락지가 한 20여평 남짓 됩니다. 그리고 저 맞은편 20여평 공터에도 이미 꽃씨를 뿌려놨죠. 아마 봄에는 여기 저기 야생화가 물결을 이룰 겁니다. 그리고 재정적인 여건이 된다면 이 곳을 시작으로 모든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안양천에도 테마가 있는 야생화 군락지를 더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누군가는 해야한다’라고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누군가가 자신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여기에는 크건 작건 얼마간의 희생이 따르기 때문이 아닐까?

봄에 피는 야생화 관련 서적은 모두 섭렵했고 이제는 여름 야생화를 공부중이라는 홍순갑씨. 늘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그 자연속에서 아픔을 치유하려는 그는 꽃 병원 원장인 셈이다.

광명시청 홍보실 온라인미디어팀 원현순 주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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