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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광명은 반드시 나의 힘이 돼 줄 것..."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지역 중소기업 이종덕 대표

  • 기자명 시민필진 홍선희
  • 승인 : 2013.05.27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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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확장 발판이 됐던 광명, “이곳은 나의 힘!”

일이 터진지 50일이 다 돼간다. 그런데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싶다. 10여년 전 사업 초기에 가동했다가 지난 2007년 말 개성공단으로 입주하면서 정리해 제품개발실로 사용했던 광명시 철산동의 지하공장. 계단을 밟아 내려갈 때 마다 이종덕(55) 씨는 잠시 잊었던 참담함이 밀려온다. 한숨이 절로 새 나온다.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이 깡그리 사라지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간 것 같다. 암담하기 이를 데 없다.

“제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제 사업체와 직원들이 고통을 겪고 있고, 그럼에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정말 괴롭습니다. 언제 다시 개성공단으로 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어 더욱 맥이 빠집니다.”

 

한 낮에도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이곳 지하공장에서 다시 희망을 찾을 수 있을까. 형광등불 아래, 밀린 수주 물량을 맞추느라 분주한 20여명의 직원들을 보며, 애써 감정을 추스른다.

여성 속옷을 제조해 수출하는 중소기업의 대표인 이씨는 지난 4월 개성공단 운영이 전면 중단되면서,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았다.
공단 현지에 있는 그의 공장은 약 5,300㎡(1,600평) 부지에서 400여명의 생산근로자가 일할 정도의 규모였다. 지난해 수출실적이 230만 달러, 매출액은 약 100억 원에 이르는 건실한 업체를 꾸려왔던 그. 지금 자신이 경영을 시작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 같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개성공단과 국내 공장은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차이가 나기 때문에 제품 임가공 비용도 다르다. 따라서 현재는 개성공단에서 물건을 만들 때 보다 더 비싼 값에 제품을 납품해야 하지만, 이미 수주계약이 끝난 상황에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어찌 보면 물건을 만들어 낼수록 그의 금전적 손해는 더욱 커져가고 있는 셈이다.  
 ▲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광명시 소재 중소기업 대표 이종덕씨

“차라리 회사를 부도 처리하고, 물건을 아예 생산하지 않는 게 오히려 손실을 줄이는 방법이에요. 그러나 수년간 거래해 온 업체들과의 신용마저 무너뜨리면 그야말로 제 모든 것을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사무실 직원을 포함해 그의 어깨에 달린 사람들이 40여명이고, 협력업체만도 70곳이나 되다보니, 그들 때문이라도 쉽게 무너질 수는 없는 일이다.

“제가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25년이 됐고, 제 사업을 시작한 것도 벌써 15년이나 됐습니다. 그동안 바친 제 젊음이 억울해서라도, 또 저만 바라보고 있는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재기를 해야겠다는 각오로 겨우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가 북한 개성공단에서 최종 철수한 것은 이달 초다. 처음 개성공단 통행이 전면 중단된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만 해도 길어봤자 3~4일이면 해결될 것으로 그는 믿었다.

과거에도 남북 관계가 불편할 때마다 언급된 것이 바로 개성 공단이었고, 통행이 막혔다가도 이내 풀리곤 했던 터라 설마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미리 예견이라도 했으면, 준비를 했을 텐데, 갑작스럽게 공단 운영 중지와 근로자 철수 결정이 이뤄지다 보니, 몸만 겨우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거죠.” 

 

지난 5년간 한솥밥을 먹었던 현지 근로자들과 제대로 작별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부랴부랴 만들어진 제품을 봉고차와 승용차 각각 한 대에 싣고 나왔다. 전체 완제품의 5%도 채 되지 않은 물량이다. 만들다 만 반제품, 생산설비와 기자재 등은 눈물을 머금고 그대로 두고 나와야 했다.

“입주 한지 5년이 넘어, 사업 규모가 어느 정도 정상궤도에 올라있었어요. 특히 3월부터 6월은 생산의 성수기입니다. 그렇다 보니 자재가 이미 넉넉히 들어가 있었고, 제품생산도 한창이었죠. 이런 시점에서 철수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 손실이 더욱 큽니다.”

이씨가 개성공단에 투자한 순 자본은 약 50억 원. 여기에 공장운영 등에 따른 부대비용을 포함하면, 대략 70억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현재 정부로부터 보상받을 수 있는 금액은 잘해야 18억 원 정도 밖에 안 될 것으로 이씨는 예상하고 있다.

“현재 정해놓은 규정으로는 순 자산의 최대 90%정도만 보상이 된다고 해요. 그나마도 감가상각을 통해 보상액이 결정되기 때문에 제가 실제 느끼는 손실을 메우기에는 어림도 없어요. 그 돈으로는 은행 부채 해결하기도 힘듭니다.”

공단 철수 이후 그는 철산동과 가학동에 있었던 기존의 생산 공장 시설을 재정비해 가동하고, 10여 곳의 외주업체를 통해 납기일을 맞추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 규모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실태다. 그러다 보니, 납기 지연에 따른 불만과 항의도 빗발쳐 이를 해결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개성공단에서의 사업이 한창 번창했던 지난해 5월, 캄보디아에 해외 수출 공장을 세웠는데, 앞으로는 이곳에 좀 더 집중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게 이씨의 각오다.  

  ▲ 개성공단에서 철수한 중소기업대표(오른쪽 두번째)와 양기대 광명시장(왼쪽 두번째)

“광명시에서도 제가 철수 해 온 직후 전략적으로 생산인력을 알선해 주면서, 생산라인이 좀 더 빨리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됐어요. 하루에도 두 번씩 구직자들을 직접 데리고, 시 일자리창출과 직원이 사무실을 방문하고 있고요. 얼마 전에는 양기대 시장님이 직접 공장에 오셔서 격려해 주시기까지 했어요. 이런 도움이 헛되지 않게,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겁니다. 내수 규모는 좀 줄이는 대신, 특허품위주로 제품을 생산해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 주력할 생각이에요.”

이씨에게 광명은 좀 특별하다. 지난 1999년 자신의 사업체를 처음 꾸린 이후, 사업이 커지면서 건물을 매입해 공장을 차려 옮겨 온 곳이 바로 광명이다. 1층의 공장을 2층과 3층으로 확장하며 규모를 늘렸고, 그 덕분에 개성공단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이다.  

개성공단에 들어갈 때 제 모든 자산을 정리해 투자하는 바람에 지금은 광명에 제 명의의 건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미래를 꿈꿨고, 그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 준 곳이 바로 광명이죠. 비록 셋집 살이지만, 광명은 반드시 나의 힘이 돼 줄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글/홍선희 진시민필 spanishi95@hanmail.net    사진/광명시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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