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 광해군, 인조 3대에 걸친 명재상이자 대표적인 청백리
정확하고 신속한 현장 중심의 일처리, 수양을 통한 자기관리 강조
이원익 선생이 가장 강조한 것은 인간으로서 수양을 통한 기본적인 자기관리였다. 감정적이지 않고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여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처신했다. 또 정확하고 신속한 일처리와 현장 중심의 일처리를 강조했다. 선생이 안주목사로 부임했을 때 보통 군관이나 향리들이 옮기던 군량의 이동을 직접 행하여 부패한 중간 관리의 농간을 방지했다.
관감당과 오리영우(사당), 종택 등 문화재 관람할 수 있어
선생은 공명정대함과 온건한 행정을 주장했다. 일을 처리할 때 편법이 아닌 공개적인 방법을 통해 중간에서의 왜곡을 막고, 군관이나 향리를 다스릴 때에는 신상필벌을 분명히 하되 너무 각박하지 않도록 충고했다.
형벌을 처리할 때는 자기감정을 잘 통제해 공평하게 처리할 것을 강조했다. 또한 정확하게 하되 매사에 상황을 돌아보며 온건하게 추진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런 자세로 반대파를 포용해 정적들도 그를 존경하기까지 하였다.
특히 선생은 대동법 시행에 일조를 하는 등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 많은 힘을 썼다. 다양한 토산물로 납부돼 백성들에게 부담이 가고 중간 관리자의 수탈이 많았던 공물납부 제도를 쌀로 통일해 거두는 대동법은 백성들의 생활 개선에 크게 기여를 한 정책이었다.
현재 광명시 소하동에 인조로부터 하사받은 관감당과 사당인 오리 영우, 종택 등의 문화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