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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정뉴스

인생 2막 타이틀은 자원봉사활동

인 터 뷰 | 복지돌봄국 이병인 국장

  • 기자명 시민필진 김은정
  • 승인 : 2015.06.09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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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9월 10일. 벌써 40년 전 일이건만 광명시 복지돌봄국 이병인 국장은 경기도 양평군 강상면사무소로 5급을류(현9급) 지방행정서기보시보로 첫 출근하던 날짜를 여전히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 세상 물정도 모르는 스무 살 화전(火田)정리 업무로 공무원 시작

“제 나이 스무 살에 공무원이 됐습니다. 스무 살이면 거의 천둥벌거숭이잖아요. 세상 물정도 모르던 제가 처음 맡은 업무는 화전(火田) 정리였습니다. 산에 들어가서 움막 짓고 조그맣게 밭을 일구면서 먹고 사는 화전민들을 삶의 터전 에서 이주 또는 이전시켜야 했습니다.”
지금이야 웰빙, 힐링이라는 이유로 산속 생활을 선망하지만, 1970년대만 하더라도 먹고 살 게 없어서 산으로 들어가 화전 밭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다. 이주는 산에서 내려와 생활터전을 도시로 옮기는 것을, 이전은 면소재지로 옮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주하면 40만 원 그리고 이전하면 27만 원의 지원금이 나왔다. 현재 화폐가치로 따지자면 이주비는 2천만 원, 이전비는 1천 4백 만원 정도로 볼 수 있을 듯하다.
“생활터전을 옮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양평군 용문면에 있는 화전민 30여 가구를 이주 또는 이전을 시켜야 했습니다. 30여 가구 모두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문득문득 떠오르는 한 분이 있습니다. 쉰 중반쯤되는 아내와 일곱 살 아들과 함께 사는 일흔 살 가까이되는 어르신이 계셨어요. ‘자식에게 만큼은 가난을 대물림하고 하고 싶지 않았는데, 무호적자에게 호적과 주민등록을 등재해 주어, 자식 교육도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줘서 너무 고맙다’며 손주 같은 제게 몇 번이고 고개 숙여 인사하셨어요.”
어르신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주 지원금 40만 원 중 5만 원을 꺼내 그의 손에 쥐어주셨다. 안 받겠다고 연신 손사래를 쳤건만 어르신은 어느 틈엔가 돈을 그의 호주머니에 넣으셨다. 결국 그는 5만 원에 지갑을 턴 용돈까지 보태서 이불과 쌀 등 부엌의 각종 살림살이를 사서 어르신 댁에 가져다 드렸다고. 

 
# 그에게는 초심, 초석처럼 떠올리는 일이 하나 있다.

그는 그 후 양평군 양평면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군에 입대 군복무를 마치고 남양주군청을 거쳐 1982년 광명시로 발령을 받았다. 광명시에서 그가 거쳐 간 자리만 하안2동장, 광명2동장, 지도민원과장, 기업지원과장, 복지정책과장 등으로 다양하다. 어느 부서에서 어떤 업무를 하건 상관없이 그에게는 초심, 초석처럼 떠올리는 일이 하나 있다.
“1990년 공보실에 근무하던 때였습니다. 철산1동 삼각주마을에 수해복구 작업을 나갔는데, 살림살이가 모두 진흙투성이가 돼서 마땅히 갈아입을 옷조차 없더라고요. 당장 갈아입을 옷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빨래를 해드려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10여 가구 집을 돌면서 수거한 옷을 집에 가지고 갔죠. 아내랑 다용도실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늦게까지 손빨래를 해서 다음날 가져다 드렸더니 너무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때 그는 ‘시민들이 원하는 일이 뭔지 찾아내서, 그 일을 하는 게 내 일이구나.’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 그의 철학은 광명2동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

“동장은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보다 관할구역을 순찰 다니는 시간이 많아야죠.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집들이 눈에 띄어요. 반 지하에 살면서 장애가 있는 자식을 집에 두고 돈 벌러 갈 수 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은 어떻겠습니까? 정말 도움이 필요한데 도움을 청하는 방법조차 모르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런 분들을 찾아서 그분들께 꼭 필요한 맞춤형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그는 2013년 3월부터 광명2동을 복지 동으로 시범운영해오다 2014년 1월 18개동 전체를 복지 동으로 운영 해오고 있다. 복지동 제도는 동장과 사회복지사, 방문간호사 등 3인1조가 돼 근무일에 3가구이상 복지소외계층을 찾아가 보건, 복지, 고용, 법률상담 등을 제공하고, 생활복지기동반을 출동시켜 소규모 생활불편 사항을 수선해주는 제도이다. 그는 이러한 성과를 거둬 그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복지업무만 해온 것은 아니다. 2007년 12월부터 2009년 6월까지 추진했던 불법단속 업무 또한 그의 가슴에 아로새겨져 있다. 불법 노점상, 불법 간판, 불법 주정차 등 여하튼 불법이란 단어가 붙은 것을 단속하는 일이다.
“노점상 중에는 생계형 노점상도 있지만 기업형 노점상도 있어요. 생계형 노점상은 합법적인 영업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해 드렸지만, 기업형 노점상은 단속 대상이었죠. 그런데 앙심을 품은 어떤 기업형 노점상이 저를 해코지할 목적으로 저와 저희 가족들을 미행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하면 아찔하죠.”
하지만 맡은 업무에 충실했던 그의 노력으로 하안사거리는 ‘간판이 아름다운 거리’라는 타이틀을 얻게 되었고, 다른 인근시에서는 4년 동안 수억 원을 들여도 해결하지 못하던 기업형노점상 정리를 그는 2년이 되지 않은 시간에 해냈던 것.

 
#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정신

이제 현업에서는 떠나지만 자원봉사활동에 참여 일하는 즐거움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라는 이병인 국장. 그는 은퇴 후에도 지난 40년 세월과 마찬가지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정신으로 지내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남고 싶어 한다. 그에게 따뜻한 응원의 박수를 보내본다.

글 시민필진 김은정,  사진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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