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고 찬바람이 분다. 11월 들어 잦은 비, 지루한 늦장마에 가을이 실종됐다. 고운 단풍도 비와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단풍은 낙엽이 되고, 길바닥의 낙엽은 잠시나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비 그치고 어느새 12월, 올해 달력도 딱 한 장 남았다. 차가운 바람에 앙상한 나뭇가지가 떨고 있다. 짧은 가을은 저 멀리 떠났다. 이제 겨울이다. 나뭇잎을 떨군 나무들은 벌거숭이다. 12월의 나무에 빨간 꽃을 달고 있다. 꽃이 아닌 열매다. 열매는 꽃보다 더 아름답다.
나무마다 열매는 저마다 개성을 가지고 있다. 봄에 흰꽃과 노란꽃으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지만 가을에 빨갛고 검은색으로 다시 태어난다. 흰꽃으로 피었지만 사람의 피부색이 다르듯이 나무의 열매도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산수유는 노란꽃이지만 열매는 빨갛다. 백당나무와 덜꿩나무는 흰색이지만 빨간색이다. 색깔도 아주 강렬하다. 나무들은 사계절 아름다움을 전한다. 봄에는 꽃으로 기쁨을 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선사한다.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겨울엔 빨간 열매로 생을 마감한다. 12월 주말에 도덕산을 걷는다. 길섶의 앙상한 가지에 빨간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다. 열매는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세상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