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감수성, 평등한 사회를 위한 지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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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감수성, 평등한 사회를 위한 지름길
제2기 광명시 여성친화 서포터즈’의 역량강화 교육 '2016 광명시 여성 아카데미'
  • 시민필진 정연주
  • 승인 2016.03.1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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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25일에 광명시 평생학습원에서는 ‘제2기 광명시 여성친화 서포터즈’의 역량강화 교육을 겸한 ‘2016 광명시 여성 아카데미’가 진행되었다.

이 날 강의는 [미디어 속 젠더 바라보기]라는 주제로 성평등연구원의 노경애님과 [여성친화도시와 지역 모니터링]이라는 주제로 ‘젠더N다양성센터’의 조혜련 대표가 열강하였다.

현대사회를 살아감에 있어서 여성의 권익이 왜 중요하고 그것이 사회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심도 깊은 명강의는 약 3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이 날 강의의 핵심어는 바로 ‘젠더(Gender)’다.

Gender는 성(性)을 말한다.

성(性)을 표현하는 영어 단어 중 SEX가 생물학적 성을 뜻한다면 Gender는 사회적 인식의 성을 의미한다. 성평등, 성차별... 등등은 바로 이 젠더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것들이다. 여자다워야 하고, 남자다워야 하며, 여자의 본분, 남자의 본분 등등을 운운하는 모든 고정관념들이 바로 이 젠더 이기주의와 젠더적 권위주의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노경애 성평등연구원은 특히 각종 미디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성별 역할에 대한 고정적 편견에 대해 강조했다. 미디어의 파급력과 영향력은 현재에도 대단하며 앞으로도 엄청날 것이기에 그 곳에서 생산된 그릇된 젠더 정보를 무방비로 받아들이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1950년대 미국의 한 식품광고 영상이 강의실 전면에 보인다. 이전에 비해 손쉽게 열 수 있는 토마토케첩 병마개를 개발한 한 회사에서 ‘여자도 이런 걸 열 수 있다’는 카피를 사용하고 있다. 여성은 케첩병 뚜껑조차 혼자서는 열 수 없는 의존적이며 수동적이고 미완성된 인격체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광고는 젠더로서의 여성이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모습으로 그리고 있을까?

 곧바로 한 생명보험회사의 광고 화면이 보여진다.
당당한 현대 직장 여성을 연상시키는 여성의 머리 위로 보이는 카피 문구는 가히 충격적이다.
“남자는 보험이 아니다.”
어린 아이를 안고 있는 세련된 젊은 엄마의 머리 위로 보이는 문구 또한 다르지 않다.
“남편은 보험이 아니다.”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위한 보험을 준비해 두라는 의미를 강조하려던 광고는 어쩌면 기발한 문구를 사용했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60년전 미국의 광고에서 노골적으로 표현된 의존적이고 수동적이며 불완전한 인격체로서의 여성이 그대로 옮겨온 듯한 찜찜한 느낌은 지울 길이 없다.

그렇게 남자와 여자의 특성을 구분 짓는 편견은 부모가 자녀를 바라보는 눈길에서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은 또 다른 충격이다.

과학영재스쿨에 재능을 테스트 받으러 오는 아이들 중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부모의 추천으로 오는 반면 여자아이들은 주로 선생님의 추천을 통해서 온다고 한다.

남아와 여아에 대한 과목별 성취도에 대한 기대가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선생님의 눈에는 발견 되어지는 여자 아이들의 과학적 재능이, 얌전한 어학적 재능을 가진 딸로 자라주기를 바라는 대부분 부모의 눈에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과학이나 수학을 잘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 딸보다는 아들에게로 편향되어 있기 때문이고, 결국 기대하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것이다.

여자에 대한 편견은 기대의 편견을 낳고 결국 그 편견이 내 딸의 재능까지도 덮어버리고 만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불행이며 일종의 젠더 폭력이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는 ‘다름’으로 인정하는 것이 전적으로 옳다. 그러나 그 생물학적 다름이 사회에 참여하는 기회에 제한을 두는 핑계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젠더적 양성평등은 우리의 자녀들에게 차별없는 기회를 제공하는 사회를 물려줄 의무를 지닌 우리가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숙제라 할 것이다.

여성과 남성의 차이로 인한 삶의 현실을 이해하고 그로부터 비롯되는 요구의 차이를 인식하며, 성별 불평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관심과 태도를 ‘성인지 감수성’ 혹은 ‘젠더 감수성’이라고 한다.

자녀 양육을 엄연한 여성의 영역으로 인정하고 아빠는 양육의 책임자이기보다는 ‘도와주는’ 사람으로 인식하는 성인지 감수성 낙제생이 대부분인 사회에서 는 여성은 결국 일과 양육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을 수 밖에 없고, 둘 다를 원할 때에는 엄마가 아닌 또 다른 여성(할머니 등)의 희생이 수반되어야 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누군가의 아내나 누군가의 엄마로만 머물러 살기를 바라며 딸을 키우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치고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도 어려움이 없기를 바란다. 결국 양성평등은 내 딸, 내 아내와 더불어 남자들도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지름길이다.

일과 양육을 병행하는 인구집단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정책과 도시계획에 그 고민이 반영될 때,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동등한 참여와 혜택의 분배가 보장되며 일상생활에서 성별에 의한 차이는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예민한 젠더 감수성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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