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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기로 희망을 찾은 사람들

  • 기자명 시민필진 홍선희
  • 승인 : 2011.09.01 10:34
  • 수정 : 2012.09.19 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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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나기는 모두가 함께 희망을 찾아가는 길이다.

 
#사례1 “3남매와 함께 다시 일어서다”


집 임대료를 4년이나 내지 못해 당장 쫓겨날 처지에 놓였던 박모(38) 씨. 초등학생 남매와 두 살배기 아들까지 3남매를 데리고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하기만 하다.

어려운 형편에도 장모의 병수발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지게 된 6천만원의 부채. 박씨가 일용직으로 일하고, 부인이 자활근로를 통해 벌어들이는 한 달 수입은 많아봤자 150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고정적인 수입이 아니어서 매월 이자와 월세, 생활비를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군다나 허리디스크와 당뇨 등으로 박씨의 건강은 현재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다. 치아마저도 거의 없어 제대로 된 식사도 못하고 죽만 먹다보니 건강도 더욱 나빠질 뿐이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마음이 아프다.

곰팡이로 뒤덮인 지하방과 살림살이 때문에 아이들이 아토피와 폐렴으로 밥보다 약을 더 많이 먹을 정도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딸아이는 열악한 가정환경 탓인지 많이 위축되고 정서장애까지 보이고 있다. 조금씩 지원받는 국가지원금으로는 끝도 없이 되풀이 되는 빈곤을 벗어나기가 요원한 일.

끝없는 터널 속 을 걸어가는 듯한 박 씨 가정에 한줄기 빛이 비춰졌다. 광명시 희망나기 운동본부에서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보증금 1천만원이 지원됐기 때문. 이 돈이면 그래도 지하 방살이는 면할 수 있다. 밝은 햇빛이 들어오는 새 집에서 박 씨는 다시 일어설 각오를 다잡아 본다. 폐렴으로 밤잠을 설치던 막내아들도 이젠 기침 없이 곤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사례2   “공부 더 열심히 할게요”

내년에 중학교에 가게 되는 민지(가명)는 요즘 정말 신이 난다. 일주일 전 그렇게 소원하던 화장실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기 때문. 민지 아빠는 10여 년 전 사업실패로 1억5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다. 부모님은 모두 신용불량자인 상태다.


엄마는 만성 말기신부전증으로 일주일에 세 번씩 신장투석을 받고 있다. 아빠도 고관절 이상으로 몸이 불편해 제대로 된 직업을 갖기 어려운 상황. 그래도 민지아빠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용산 인쇄소거리를 찾아 상하차 작업을 하며 조금씩이라도 생활비를 벌었다. 그런데 요즘은 경기 침체로 임금조차 제대로 받지 못해 생활이 더욱 어려워졌다.

민지네 세 가족은 상가건물에 딸린 반지하방에서 살았다. 그래서 화장실을 건물 이용객들과 같이 사용했다. 민지 아빠는 한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서도 신발을 신고 밖으로 화장실을 가는 민지를 볼때면 너무 속상하고 민지에게 한없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책상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이런 집에서도 불평한마디 없이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성적을 내는 민지가 한없이 대견하다.

이런 민지네에게는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1,200만원이 지원이 됐다. 그래서 민지네는 화장실이 딸린 방 2개짜리 2층집으로 이사를 하게 됐다. 그럴듯한 공부방까지 갖게 된 민지는 요즘 학구열에 불탄다. 샤워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신발을 신지 않아도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는 집에 살면서 민지네 집은 날마다 웃음꽃이다.  

 

#사례3 “새 생명을 얻었어요”

독거노인인 김 할머니(84)는 이제 “잠든 채로 죽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이젠 절대로 하지 않는다.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런 생각은 죄를 짓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다. 

김 할머니는 4남매를 두었으나 재산 증여 문제로 자식들과는 아예 연을 끓고 산 지 오래다. 한 달 고정수입은 기초 노령연금 9만원이 전부. 폐지와 빈병을 주워 모은 몇 만원을 더해 겨우 하루하루를 버텨왔다. 당뇨합병증과 급성 폐부종으로 8월초 병원에 입원했었으나 병원비가 없어 퇴원했다.

그 이후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로 방치돼 있다가, 다행히 가사도우미에 의해 발견돼 병원으로 옮겨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됐다. 현재까지 희망나기 운동본부의 지원을 통해 병원에서 입원 치료중이다. 김 할머니는 사례접수 하루 만에 긴급지원이 이뤄졌다. 이런 신속한 조치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김 할머니의 모습을 장담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김 할머니를 사례를 신고하고 병원으로 옮긴 가사도우미 자원봉사자 조모 씨는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렵다는 말을 달고 사셨던 박 할머니이신데 요즘은 달라지셨다”면서 예전보다 훨씬 강한 삶의 의지를 보인다고 할머니의 근황을 전했다.

    

#사례4 “기부로 갚을게요”

노부모와 중3 아들은 둔 이모(48) 씨는 아직 세상은 살아볼 만 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체감했다. 5년 전 사업실패로 1억 5천만원의 빚을 지면서 이혼까지 하는 가슴 아픈 경험을 하게 됐다.

그래도 아들과 여든이 넘은 노부모를 위해 택시운전을 하면 열심히 살았다. 그 덕분에 빚을 거의 다 갚아갈 무렵, 이번에는 이씨에게 예기치 못한 병이 찾아와 그를 주저앉혔다. 귀 달팽이관에 염증이 생겨 극심한 현기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어쩔 수 없이 휴직을 하게 된 것이다. 여든의 노모는 치매 증상까지 보여 실질적인 자녀 양육과 가사 노동을 이씨가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수입이 없으니 빚은 다시 늘어나기 시작하고, 과거 사업실패에 대한 두렵고 아픈 기억이 이씨를 더욱 불안하게 했다.

산 넘어 산이라더니 이씨는 열심히 살아보려는 자신에게 왜 자꾸 악재가 겹치는지 세상이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런 이 씨에게는 100만원의 생계비가 지원됐다. 이 정도면 넉넉지는 않지만 4가족이 한 달은 생활할 수 있는 돈이다. 밀린 공공요금과 아파트 관리비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이 씨는 “어디 마땅히 도움 청할 곳도 없고, 제도권내에서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별다른 혜택이 없어 막막하기만 했다”며 “내가 받은 100만원은 단순한 돈이 아니라 나에게는 희망의 불씨”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그는 또 “몸이 회복되면 더욱 열심히 일해 내가 지원 받은 돈을 반드시 기부로 되갚겠다”고 덧붙였다.
 

#사례5 “세상과 소통 길을 찾아줬어요”

슬하에 자녀가 없이 오직 부부가 서로 의지하며 살아온 이모(67) 씨 내외는 부부를 넘어서 서로가 친구이자 형제이자 동료이다.

이 씨에게 두 살 연하의 부인 정 씨는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재다. 이런 부인이 유방암으로 투병중이니 자신의 목숨이라도 내놓아 아내를 살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내가 아프기 전에는 200여 만원의 수입이 있어 그럭저럭 살만했다.

그러나 아내 병간호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수입이 끓기고 가지고 있던 돈도 다 쓴 상태다. 남은 거라곤 7,500만원의 전셋집뿐인데, 이마저도 없으면 아내가 쉴 곳이 없어 어떻게든 집은 지키고 싶다. 그런 이 씨에게 아내의 향후 수술비와 치료비 500만원이 지원됐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그에게 이 돈은 자립의 밑거름이 됐다. 둘이 함께 하지 않는 세상을 꿈에서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이 씨 부부에게 수술비는 아내의 건강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것이다.

희망나기 운동본부 관계자는 “지원금 입금 통보를 위해 이 씨에게 전화했더니 울먹이며 고마워했다”면서 “아내가 수술과 항암치료를 잘 받고 건강만 되찾으면 예전처럼 다시 열심히 일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의지를 밝혔다”고 전했다.

 
#사례6 “마음의 짐을 더니 행복이 오네요”

말기 신부전증으로 오랜 투병생활을 한 아버지와 정신장애까지 있는 여동생을 두고 따로 살면서 장남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마음의 짐 때문에 괴로워했던 황모(39) 씨.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식된 도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겁다.

치료비 500만원을 지원받으면서 아버지의 중환자실 입원 치료를 지속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위급했던 아버지의 상황도 호전되고, 불안정했던 자신의 가정 경제상황도 나아졌다. 그 때문인지 아내와의 갈등도 많이 줄어 자신의 가정에도 행복이 깃들고 있다.
 
아버지의 병간호와 치료비로 아내가 너무 힘들어해 어쩔 수 없이 분가는 했지만 황모 씨는 그래도 매주 아버지를 찾아 8만원씩 생활비를 드리며 아버지를 보살폈다. 월수입이 150만원이라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2천만원이나 되는 아버지 병원비와 여동생의 정신과 치료비를 부담하며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른 듯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 치료비 500만원은 삶의 단비와도 같았다.

황씨는 최근 희망나기 운동본부에 다음과 같은 글을 전했다.

“7개월 넘게 하루에 두 번씩 아버지 면회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다니며, 그 경과를 매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연히 광명희망나기운동본부를 알게 돼 민간 후원으로 저희 아버님이 도움을 받게 돼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아! 나도 언젠가는 기부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 꼭 이 빚을 갚도록 해야겠다구요.”
 

#사례 7 “바깥나들이가 두렵지 않아요”

지체 장애아를 둘씩이나 키우고 있는 엄마 김모(49) 씨. 요즘 두 아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일이 잦아졌다.

3남매를 둔 김 씨네 한달 수입은 350만원이 넘는다. 사실 제도권내 지원은 생각지도 못할 수입이다. 그러나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 등으로 2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다, 장애 아들들을 돌보느라 매월 고정적으로 지출되는 치료비 등을 제하면 결코 넉넉한 형편이 아니다. 아들들 기저귀 값만 해도 매달 15만원이 넘게 나간다. 뇌병변 장애아인 아들들은 신체 변형으로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들어갈 수술비와 치료비는 얼마가 될 지 예상할 수도 없다.

그런 그녀에게 간절했던 것은 장애아동 이동식 유모차였다. 한 대에 200만원 가까이 되는 이 유모차를 구입하지 못해 그동안 병원이나 복지관을 이용할 때 아들들을 업고 다니느라 진땀을 빼곤 했다. 특히 성인이 된 큰 아들을 들어 옮기거나 업는 일은 그녀에게 너무나도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원받은 유모차를 태워 옮겨 다니니 얼마나 수월한지 모른다. 엄두도 못 냈던 바깥나들이에도 가끔 용기를 내 본다. 그녀만을 위해 지원된 이 장애아동 이동식 유모차는 단순한 이동수단이 아니다. 하루 종일 집안에서 지내야 했던 김씨와 그녀의 아들들에게 세상으로 나가는 길이 돼 준 것이다.
 

#사례 8 “이젠 아이들이 웃어요”

가정폭력에 시달리다가 그룹홈 생활 중인 초등학생 준우(11) 형제가 최근 웃는 일이 많아졌다. 희망나기 운동본부의 지원으로 정기적인 심리치료를 받으며 안정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빠의 무자비한 폭력 때문에 3년 전 부모가 이혼을 한 뒤 아빠와 생활했던 준우형제. 이들을 돌보러온 고모마저도 아빠의 주먹질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결국 아빠와 분리돼 그룹홈 생활을 하게 됐지만 수년간 폭력에 노출된 터라 정서적으로 매우 불안정하고 1년 정도의 장기적인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친권자인 아빠의 수입으로 국가적인 지원은 어려운 상황. 또 앞으로 이들 형제의 치료비를 아빠가 지원할 의지가 있는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선 아이들의 정서안정을 위해 매월 고정적인 심리치료비가 지원된다. 조금씩 얼굴에 웃음을 되찾아가는 이들 형제의 바람은 평범한 가정에서 두려움 없이 생활하는 것이다.
 

#사례 9 “내 가정을 지켜준 최후의 보루”

조선족 남편과 결혼해 한국으로 옮겨온 일본 여성 M(47) 씨는 초등학생과 중학생 남매를 뒀다. M씨는 남편의 오랜 알콜 중독으로 인해 자신이 생업을 책임지고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스피드스케이팅에 재능을 보이는 중학생 딸아이를 위해 학원비는 어떻게든 내고 있다.

그러나 가장의 무능력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가 외국인 여자 혼자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더군다나 최근에는 관리비를 2개월째 연체하면서 그나마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에서 마저 퇴소위기를 맞았다. 어떻게든 남편의 치료해보기 위해 올 3월부터 남편을 입원치료 시키면서 경제적 상황이 더욱 나빠진 것이다.

M씨는 생활비는 자신이 어떻게든 벌어볼 테니 아이들을 위해서 안정된 거주환경은 절실하다며 희망나기운동본부에 도움을 요청해 왔다. 이들에게는 결국 100만원의 생활지원금이 지급됐고, 이것으로 M씨는 임대료와 관리비를 해결하게 됐다. 당장 해결되지 않으면 자칫 가정 해체의 위기로 까지 내몰릴 수 있는 상황에서 100만원이란 후원금은 한 가정을 지켜준 ‘최후의 보루’가 된 것이다. 
 

#사례10 “북한이탈민에게도 정말 따뜻해요”

북한이탈주민 조모(34) 씨는 조선족 남편 결혼해 지난해 쌍둥이 자매를 미숙아로 출산했다. 그러나 임신중독으로 32주만에 낳다보니, 두 딸 모두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났다.

남편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부도가 난데다, 혼인신고마저 하지 않아 현재 불법체류자 신분. 결국 남편은 제대로 취업활동을 할 수 없고, 조씨 역시 두 딸 때문에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 한부모 가정 수급비 90만원 외에는 이들 가정에 아무런 수입이 없는 상황이다. 생계유지만으로 벅찬 수급비로 두 딸의 병원비와 치료비를 감당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 특히 심장 초음파나 MRI같은 전문적인 검사는 국가의 의료비 지원이 되지 않아 1년에 한번씩 받아야 하는 정기검진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지난해 정기검진을 받지 못하면서 아이의 건강마저 나빠져 조 씨의 절망에 무게를 더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이 가정에는 초음파 검사비용 60만원이 지원됐다. 수술이 가능한 5살이 될 때까지 어떻게든 두 딸을 지켜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조씨. 한국의 따뜻한 손길의 조씨의 딸들의 희망 등불이 돼 주었다.  
 

·홍선희<자유기고가>/일러스트·류상욱<일러스트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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