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가 지난 절기상 봄이다. 입춘이후 한동안 머물던 추위는 슬그머니 물러가고 날이 풀리는가 싶더니 기온이 다시 뚝 떨어진다. 그래도 벌써 남도에 꽃소식이 들린다.
양산 통토사에 홍매는 전국의 꽃쟁이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지리산의 개구리는 경침이 되기도 전에 겨울잠에서 깨어나 활동을 시작했다.
무등산 복수초, 영취산의 변산바람꽃 개화소식이 매스컴에 소개되고 있다.
도덕산은 아직 봄 같지 않다. 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란 시구가 딱 어울린다.
도덕산은 잔설이 남아 곳곳이 빙판이다. 얼음이 녹고 있지만 낙엽덮힌 산자락에 언제 풀꽃이 돋아날지 모르겠다. 나무에 줄기만 남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난 순진한 산이다.
도덕산은 구멍이 숭숭 뚫린 겨울산이다. 10여일 지나면 3월, 산은 초록숲이 될 것이다.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내려 잎지고/ 바람매 맞으며/ 숭숭 구멍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단단한 겨울나무.
2월에 찾은 도덕산에서 이재무 시인의 <겨울나무>를 불러 본다.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꽃은 재촉하지 않아도 때를 알고 핀다.
남도의 꽃바람이 도덕산까지 올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봄은 한겨울의 추위를 견디듯이 참아야 한다. 꽃샘추위가 남아 있지만 봄은 우리 곁에 있다. 산새들은 사랑의 계절에 진입했다.
꽃은 없지만 나뭇가지를 옮겨 다니며 사랑의 세레나데 연주에 바쁘다.
꽃씨속에 숨어 있는/ 꽃을 보려면/ 고요히 눈이 녹기를 기다려라/ 꽃씨속에 숨어 있는/
잎을 보려면/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려라. 시인 정호승은 <꽃을 보려면>에서
꽃을 보려면 기다리고 말한다. 도덕산에 봄의 전령사인 복수초 꽃소식은 멀었다.
산자락에 눈이 녹고 흙의 가슴이 따뜻해지지기를 조용히 지켜 보아야겠다.
이미 봄은 가까운 곳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