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과 함께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고 있을 때에는 자유로웠어요. 하지만 혼자 소녀상 그림을 그리고 다니면서 생각도 깊어지고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됐어요.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면 큰 힘이 된다고 하는데 제가 오히려 더 큰 위안을 받기도 하고요.”
3개월 전부터 한 학기를 남겨둔 채 휴학을 하고 우리나라 전국을 다니면서 평화의 소녀상을 모두 그리고 있는 김세진 씨의 말이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70여 개의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이 작업을 위해 3개월 동안 힘든 공사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비용을 마련했다.
그의 평화의 소녀상 그리기 작업의 출발점은 부산이었다. 서울도 아니고 부산인 이유가 궁금했다. “부산의 소녀상은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잖아요. 한번 철거된 적도 있고 많은 수난을 겪기도 한 곳이라 애착이 생겨 그 곳부터 시작하게 되었어요. 처음 시작할 때에는 위안부 할머니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이었는데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단 것도 알게 되었어요. 할머니들은 누가 특별히 도와주는 것보다 할머니들과 함께 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을 안 거지요.”
3개월 동안 그는 50여 개의 평화의 소녀상을 그렸다. 직접 현장에 가서 그리며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가 어느 지역의 소녀상을 사진으로 찍어 집에서 그리면 편하지요. 하지만 제가 현장에서 소녀상을 그리고 노숙을 하는 것은 하나의 퍼포먼스이기도 해요. 소녀상을 그리고 있으면 오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아! 여기에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구나.’하는 것을 알게 되니까요. 그럴 땐 저도 보람도 느끼고 힘든 것도 잊게 되요.”
지금까지 부산, 상주 마산, 포항, 원주, 제주 등 소녀상이 있는 곳이라면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다닌 그는 “소녀상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아끼고 잘 관리하는 곳도 많아요. 하지만 관리를 잘하지 않아서 시꺼멓게 때가 낀 곳도 있어요. 그런 곳을 보면 정말 안타깝지요. 경남 산청군에 간디란 대안학교가 있어요. 그곳의 소녀상 이름은 ‘봄’이에요. 학생들이 직접 제작을 하고 이름도 지어준 곳이라 아주 인상 깊게 감동을 받은 곳이기도 해요. 그런가 하면 포항의 소녀상은 사람들이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곳이기도 해요. 유치원생 아이들이 소녀상을 안아주고 쓰다듬어주고 만져주는 것이 마치 진짜 할머니를 대하는 것 같아 큰 감동을 받은 곳이기도 해요. 저도 오전 내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소녀상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고요.”
그의 절절한 마음이 전해지는 듯했다.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외곽지역에 설치된 소녀상도 있고, 구석진 곳이 아닌데도 구석진 느낌을 주는, 즉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 있는데도 다들 무관심한 곳도 있다. 관리가 잘 되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곳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젠 서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면 목표가 달성된다. 그동안 소녀상을 그리면서 좋은 소리, 듣지 말아야 할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안좋은 소리보다는 격려와 위로, 칭찬을 더 많이 들어 활력소가 된다고 한다. 평화의 소녀상 지킴이 활동을 하다가 잠시 매너리즘에 빠질 무렵 시작하게 된 일이, 이젠 자신이 해야 할 일이란 것이 뚜렷이 보여 한 치의 망설임도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 곳곳에 세워진 평화의 소녀상 모두는 발뒤꿈치를 들고 있거나 대부분 신발을 벗고 있다. 뒤꿈치를 들고 있는 이유는 고향에 왔지만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숨기고 살아야했던 부끄러운 과거와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 때문이고, 신발을 벗고 있는 것은 그 시절 도망치려다 신발이 벗겨진 모습이라고 한다. 이렇게 소녀상이 조금씩 다른 것은 그 지역의 특징, 역사적 사건, 인권의 상징적인 소리 등 다양한 모습을 담았기 때문이라 한다. 본인들이 잘못한 것은 단 하나도 없는데 그런 슬픔 속에서 한평생을 살아오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恨(한)은 얼마나 크실까?
그런 그가 광명동굴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그릴 때였다. 소녀상을 그리던 중 그는 평화의 소녀상 옆에서 소녀의 꽃밭을 만드는 봉사자들이 “할머니들은 무슨 꽃을 좋아하실까?”라며 고민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는 “할머니들께서는 동백, 매화 등을 좋아하세요.”라는 말을 해 주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8월 15일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건립 2주년 행사 때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옆에 그림 전시회를 열게 되었다. 그의 그림이 전시회를 갖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곱고 아름다운 색채가 칠해진 그의 그림을 보면 어느 동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동화 같은 그림은 상처, 아픔, 고통, 눈물 등 많은 사연들을 담고 있다. 그래서 더 아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마지막 장소인 서울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모두 완성이 된 후 서울시청, 성남시청, 광명시청, 전주시청, 부산시청 등에서 전시회를 가지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린 대한민국의 평화의 소녀상 그림은 모두 기증할 것이라고 한다.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않았고 해결되지 않은 ‘한일합의서 폐기, 소녀상철거 반대’ 등의 문제가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와 반성을 통해 원칙대로 해결이 된다면 그때야 비로소 김 씨도 두 다리를 쭈욱 뻗고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전한다.
그는 이런 일들이 원만하게 해결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애정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도 잊지 않았다. 매년 8월 14일은 세계위안부의 날이다. 2017년 8월 현재까지 생존해 계신 우리나라 위안부 할머니들은 모두 37명. 이분들이 생존해 계실 때 일본의 깊은 반성과 진심어린 사죄가 꼭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희망해본다. 이것이 또한 우리 모두의 바람이기도 한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 어느 평화의 소녀상 앞에 새겨진 글귀가 생각난다.
“우린 당신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잊을 수는 없습니다.”
“이런 제 이름은 ‘봄’입니다.”
※ 광명동굴에 전시된 김세진 씨의 '전국 평화의 소녀상 그림 기행展'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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