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일 수요일은 몹시 더운 날이었다. 무더웠던 이 날에도 서울 종로구 율곡로에 소재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어김없이 수요집회가 열렸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강제 징집되어 일본군 성노예로서 참혹한 삶을 살아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 일본정부의 사과와 보상을 촉구하는 정기 집회이다.
벌써 1298회째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이 길고 긴 싸움의 현장에 광명의 어린 청소년들이 함께 했다. 바로 광명동굴 평화의 소녀상 옆에 '소녀의 꽃밭'을 조성하기 위하여 기획된 ‘소녀의 꽃밭 청소년 기획단'에 소속되어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소녀의 꽃밭 청소년 기획단’은 7월 중순 발족되어 7월 27일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위안부 영상 관람, 전국 평화의 소녀상 사전 조사 등의 활동에 이어 8월 2일 수요집회에 참석한 기획단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 대해 함께 공감하며 공분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그녀들의 비통하고 억울한 시간들에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내리쬐는 여름 한낮의 땡볕을 고스란히 맞으며 1시간 30분 동안 이어진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은 곧이어 ‘소녀들을 기억하는 숲’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 평화의 공원에 위치한 이 곳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의 존귀함을 회복하고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는 숲을 만들자는 취지로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2015년 9월에 조성되었다. 광명동굴 '소녀의 꽃밭'의 원형 모델이 될 수 있는 이 곳은 그래서 청소년기획단원들에게는 더욱 뜻깊은 장소가 된다.
이후 청소년들은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을 찾았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 중 아직까지 생존해 있는 분들의 기억과 증언을 토대로 기획된 이 공간은 아프고 못난 우리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또한 지금껏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전쟁 범죄에 대한 단죄를 위해 우리가 이 모든 것들을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함을 일깨우고 있다.
크지 않은 이 ‘전쟁과 여성인권박물관’에는 평생을 두고도 풀지 못하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분들의 삶의 응어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글로 새겨둔 벽에서 본 한 문장이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설명해준다.
“그걸 다 기억하고 살았으면 아마 살지 못했을 거예요.”
박물관 2층에는 일본대사관 앞에도 있고 광명동굴에도 있는 평화의 소녀상이 있다. 단발머리를 한 앳된 얼굴은 표정이 없고, 두 손은 두려움과 분노가 적당히 섞인 듯 움켜쥐고 있고 그 여린 발은 아무것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 채 맨발을 하고 있다.
국가는, 그리고 우리는 저 소녀에게 무엇을 해 주었어야 했으며 지금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저 소녀가 상징하는 것이 단순히 과거에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존재하고 있음을 알리는 것만은 아니라는 걸 오늘 이 곳을 찾은 광명의 청소년들이 깨닫는다.
여성인권박물관은 2차 대전 중 일본군과 일본 정부가 저지른 여성인권유린에 대한 고발만 나열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세계에서 힘없는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 당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실상 또한 함께 보여준다.
일본군 성노예로 학대 당했던 한국의 생존자 할머니와 IS에게 납치되었다가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한 한 여인의 만남은 21세기 여성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참으로 아픈 장면이기도 했다. 노쇠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는 IS로부터 학대받다가 탈출한 그 여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으세요. 기억하기 싫고 잊고 싶겠지만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나처럼 얘기해 주세요.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를 잊지 않아요.”
우리가 그들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우리가 잊는다면 누구도 그들을 기억하려 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앞으로도 이런 일은 무수히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비치된 노란색 나비에 오늘 하루의 소감을 담담하고 진지하게 적어 내려가는 ‘소녀의 꽃밭 청소년 기획단' 단원들의 표정이 조금은 더 어른스러워진 것 같다.
광명동굴 소녀의 꽃밭이 갖는 의미가 한층 더 진하게 다가갔을 하루였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