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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삶] 기억할만한 지나침, 기형도와 광명시민들

  • 기자명 광명시 학예연구사 양철원
  • 승인 : 2019.03.11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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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 7일 석간신문에는 서른살의 젊은 기자가 종로의 한 극장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으며 사망원인은 쇼크로 추정된다는 기사가 실렸다.

특이하게도 이 기자의 이름뒤에는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시인이라는 약력이 하나 더 붙어 있었다. 이 기자의 이름은 중앙일보를 다니는 기형도였다.

 

 

사진출처) 광명시 블로그
사진출처) 광명시 블로그

 

 

 

비록 시집을 세상에 내놓지는 못했지만 이미 발표된 시들로 주목을 받아오던 그의 이른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해 6월, 문학과 지성사에서 그가 생전 정리해둔 시들이 ‘입 속의 검은 잎’이란 이름을 달고 유고 시집으로 나오자 시 애호가뿐만 아니라 오은 시인이 밝힌 대로 “20대가 느낄 수 있는 청춘의 고독과 막막함이 담겨있는 것 같아서”인지 많은 젊은이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 열광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그 시집은 30년째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남긴 시어가 불러일으킨 문화적 충격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가 떠난 후로부터 10여년이 지난 2002년경 광명지역의 다양한 시민이 모여 기형도가 살던 옛 집이 광명에 아직 남아있으며 그의 시에 지역 흔적들이 스며들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기형도 찾기」를 시작하였다.

그들은 그의 신춘문예 등단작인 ‘안개’와 교과서에 실려 널리 알려진 ‘엄마걱정’ 등에 수도권 위성 도시의 삭막한 풍경과 가난한 변두리 아이가 느낀 감성이 오롯이 들어가 있음을 주목하며 그의 지역성을 찾는 또 다른 시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시민들은 기형도를 사랑하는 시민모임을 결성하고 그의 시 ‘빈 집’과 비슷한 이미지의 철공소로 사용되던 시인의 집을 답사하고 지역 문화기관인 광명문화원 주최로 낭송회를 여는 등 소박하지만 다양한 활동을 이어왔다.

아쉽게도 기형도의 집은 2005년경 헐려 시가 탄생한 현장은 사라졌으나 기형도를 기념할만한 공간을 조성하고 기형도를 광명시민의 자산으로 삼고자 하는 바램을 지닌 기형도기념사업회로 변모하였다.. 이후 광명시는 시민의 뜻을 받아 기형도 시비를 시민체육관에 설치하거나 새로 문을 연 광명도서관에 기형도 코너를 여는 등 차근차근히 기형도를 지역 인물로 인식되도록 하였다.

2009년에는 20주기를 맞아 광명시와 광명문화원 등 문화기관이 추모 행사를 열어 기형도를 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에도 기념사업회와 기형도 시인을 주제로 진행하는 교육 과정인 “기형도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광명 운산고는 청소년층에 기형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교육 활동을 추진하는 등 지역 내에 다양한 분야에서 기형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드디어 2014년 기형도 25주기를 맞아 광명시는 소하동 기형도 문화공원내에 기형도문학관 건립을 공식 발표하고 500여명의 시민이 참석한 가운데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시민회관 대공연장에서 열게 되었다.

문학관 건립은 프랑스, 스페인, 독일 등에도 널리 알려진 보편성을 갖춘 시인 기형도이지만 수도권 변두리인 소하리에서 보고 겪은 풍경과 사회적 인식을 시에 형상화한 지역성을 지닌 인물로도 자리매김하는 의미였다.

이와 같은 시민들의 노력으로 2017년 11월 드디어 문학관이 개관함으로 70~80년대 산업화시대의 위성도시를 배경으로 살았던 한 시인의 언어는 새로운 몸을 지니게 되었다.

어느덧 기형도 사후 30주기를 맞아 귀한 문화 시설 역할을 하는 기형도문학관은 시민들의 참여와 오랜 노력에 더해 지방정부가 함께 만든 ‘기억할만한 지나침’(기형도의 시 제목에서 빌려온 문구)이라 생각하여 여기 기록으로 남긴다.

 

 

기형도 문학관 내부(사진출처 '광명시 블로그')
기형도 문학관 내부(사진출처 '광명시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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