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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바로알기 광명학, 우리가 알아야 할 소중한 역사

광명문화원 2022문화탐방 및 향토사보급확대사업

  • 기자명 시민필진 현윤숙
  • 승인 : 2022.12.27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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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학이란? 우리동네 인문학인가? 조금의 낯설음은 사라지고 아 이런게 광명학 이구나~ 광명시민이면 누구나 알아야 할 광명학 강의를 정말 잘 들은 것 같다, 앞으로 많은 광명시민들이 광명학을 들었으면 좋겠다,”라고 박00씨는 이렇게 말한다. 

 

 

지난 12월14일 광명문화원 강좌실에서 광명의 역사에 관한 강연이 펼쳐져 열기가 뜨거웠다.

광명시 18개동 주민자치회에서 활동하는 간사들을 대상으로 우리 광명의 행정구역변천과 광명의 역사인물(민회빈 강씨),역사인물 관련체험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광명문화원에서는 광명에서 활동하는 기관·단체를 위한 ‘찾아가는 광명학’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에 관심 있는 광명시민, 기관단체직원 등을 대상으로 광명 향토사보급 확대사업의 일환으로 문화탐방, 광명학 등에 관한 수강생을 신청 받아 찾아가는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광명학은 광명문화원에서 준비한 광명바로알기프로젝트로 광명시의 도시화과정, 자연마을에 얽힌 이야기 등을 광명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이를 통해 지역정체성확립과 역사적 자긍심을 고취하고자 2014년에 처음으로 진행되어 시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광명문화원 에서는 광명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시민들이 알기 쉽고 친근하게 전달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반시민들이 광명에 대해 막연하게 알거나 아니 전혀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 시민들에게 명확하게 광명의 역사문화와 행정의 변천 등에 관한 이야기를 전문가를 통해 쉽고 깊게 알 수 있도록 하는 지역학 프로그램으로 전달하여 광명에 대한 애향심을 지니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광명의 고유한 지역여건, 지명, 역사적 의의 등이 일목요연하게 전달되어 광명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자긍심을 지니게 하는 강연이었다.

 

민성혜(광명문화원 광명역사문화연구소 소장)소장으로부터 불과 40년전만 해도 광명시라고 불리는 이땅은 경기도 서면으로 불렸던 곳이다. 1960년대 구로동의 수출공단이 들어서면서 서울 인접지역으로 광명리, 철산리, 하안리, 소하리 등지는 도시로 개발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얘기가 흥미진진하게 전해졌다. 자연마을은 변화를 많이 겪기 마련이어서 원래의 자연마을 모습을 이제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능말에 민회빈 강씨 묘인 영회원(사적357호)가 있고 사들에 정원용(영의정, 향토유적2호)가 있다. 집성촌으로 알려진 곳은 가락골에 금년김씨, 논사리에 경주최씨, 사들에 김해 김씨, 웃장절리에 무송윤씨, 가운데말·능말·새터말에 금천강씨, 남원양씨 등이 있는데 특히 금천 강씨가 고려시대 귀주대첩의 명장 강감찬의 후예들이 많이 거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최근 민회빈의 묘(애기능)우리에게 알려진 민회빈 강씨에 관한 역사가 우리 지역 출신의 역사적 인물로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조선 소현세자의 세자빈 민회빈 강씨, 1611년 광해군 3년 강감찬의 18대손인 강석기의 둘째 딸로 태어났고 1627년에 세자빈이 되었다. 세자빈이 되었지만 병자호란 당시 청으로 끌려가 볼모로서 모진 삶을 살았다. 성리학과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모략에 휩싸여 억울한 삶을 살다가 현재의 광명시는 시흥군에 속하였고 강석기의 집과 선산이 있는 고향이 노온사동에 묻히게 된다.

노온사동의 아방리(능촌,앙왜,아왕리)는 금천 강씨의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다. 아방리 도로 건너편 구름산 자락 아래 애기능 낚시터에서 영회원으로 가는 길에 금천 강씨의 선산이 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후손이 숙종대에 고향으로 돌아와 세자빈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신원이 복귀되었다.

그녀가 잠든 영회원은 소현세자빈 강씨의 삶과 죽음으로 점철된 곳이다. 당대의 어느 여성 보다도 진취적인 삶을 살았던 민회빈 강씨가 최근엔 역사가 된 인물을 기리는 역사인물 선양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영화 올빼미와 꽃들의 전쟁으로 상영되기도 했으며 다양한 캐릭터로 제작되어 문화·예술의 컨텐츠로 자리매김 되고 있다.

그동안 알려진 민회빈의 행적은 다소 단편적이나 조선최초의 CEO, 농업을 지휘하는 여장부의 이미지가 더하여 조선의 여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는 여성으로 상징되어 민회빈에 대한 염원이 투영되고 있는 듯하다.

최근 광명의 도시화에 밀려 영회원에 대한 접근이 더 어려워진 가운데 민회빈의 삶에 녹아 있는 고난과 역경의 이야기는 영회원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광명시민들에게도 어느 정도 알려져 깊은 관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민회빈의 삶의 어떠한 부분을 드러내어 오늘날 광명 사람들이 지역인물을 향유하도록 할 것인지가 광명시의 새로운 문화콘텐츠 및 관광자원을 개발하기 위해 고민해야 할 문제이다.

광명의 얼을 꽃피워 광명을 빛낸 민회빈 강씨가 꿈꾸는 조선의 모습은 존중받아야 할 역사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사실이 강의를 통해 전해졌다. 

우리시 역사인물의 일대기 대한 숭고한 업적과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 역사자료로 집대성 되어야만 한다. 광명의 옛 지명과 자연마을의 모습은 개발의 기억 속으로 점점 사라져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다. 광명문화원의 노력으로 사라져가는 광명의 역사와 변화하는 광명의 모습, 자연환경에 관한 내용이 광명학을 통해 시민들에게 영롱한 섬광처럼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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