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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에서 힐링 숲이 되기까지 “가학산전설(傳說)”

  • 기자명 김남은 대학생기자
  • 승인 : 2023.08.23 10:41
  • 수정 : 2023.08.2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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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산(駕鶴山) 

 경기도 광명시에 위치한 산으로 학(지금의 백로로 추정)의 서식처로 학들이 멍에(수레나 쟁기를 끌기 위하여 마소의 목에 얹는 구부러진 막대)처럼 마을을 둘러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광명시민들에게는 힐링 산책로와 함께 숲세권을 제공해주는 산이며 외지인에게는 광명동굴을 품은 산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가학산은 깊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 

 

 1912년 학이 지저귀던 가학산에 날카로운 폭발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가학산의 품 안에서 금이 발견되었다. 일제는 곧바로 시흥광산을 만들어 자원을 수탈하기 시작하였고 생계를 위해 혹은 강제 징용된 광부들은 다이너마이트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먼지구덩이 속에서 광물들을 채굴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채굴된 광물들의 일부는, 일제의 태평양전쟁 무기로 사용되었다.

 

<사진 : 광명동굴 공식 홈페이지>

2013년에 건립된 광부석상은 많은 관광객들이 볼 수 있도록 광명동굴 입구에 세워져 탄광 안에서 신음했던 광부들을 기리고 있었다. 

 

 일제강점기 동안 수백kg의 황금과 수천톤의 광물이 수탈당하였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도 가학산의 고통은 계속되었다. 광산채굴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1972년 가학산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8·19 수해로 많은 비가 오자 광산 밖에까지 중금속이 흘러나온 것이다. 흘러나온 중금속은 가학산 주변 밭을 오염시켰고 보상문제가 붉어졌다. 보상은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결국 광산은 폐광되었다.

1912년 이후 딱 60년 만에 일이였다. 그렇게 가학산은 더 이상 새가 찾지 않는 버려진 야산이 되어버렸고 산의 가슴 안에는 7.8km라는 긴 구멍이 뚫려버렸다.

 

 

노두바위 쪽에서 가학산 정상을 향해 등산을 하면 마주칠 수 있었던 길은 이곳이 광산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재는 안전 상의 이유로 패쇄되어 있다.

 

처음으로 광산 개발이 시작되었던 황금노두이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을 만들어 광산개발을 시작하였다고 전해진다. 바위 주변으로 부엉이가 서식해 부엉이 바위로도 불리었으나 현재는 학들과 함께 부엉이도 영영 날아가 버렸다. 

가학산의 시련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2000년대에는 고속철도광명역 건설 계획에 따라 가학산을 관통하는 터널이 지어졌고 이 과정에서 반딧불이 서식지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재 가학산은 놀라운 자연의 자정능력과 지자체의 노력으로 본연의 아름다움을 찾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광부의 애환이 담긴 광산 위로는 이제 아이샤 힐링 숲이 만들어져 사람들에게 힐링을 제공해주며 광산은 광명동굴이라는 이름의 테마파크로 탈바꿈하였다. 

이제 가학산 안에는 더 이상 다이너마이트의 폭발음이 아니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리고 그 광산 위로는 탄광을 나르던 고된 길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더 없이 만족해하는 사람들의 흐뭇한 미소가 가득하다. 

 

가학산의 역사를 알아서 그런지 이 산이 이제는 정말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마음들이 모여서일까, 함부로 산의 마음을 추측할 수는 없지만 가학산도 슬픔을 뒤로하고 자신이 가진 것을 다시금 보여주기 시작했다. 

작년에는 반딧불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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