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의 기적’ 광명동굴
‘폐광의 기적’ 광명동굴
  • 한겨레 홍용덕 기자
  • 승인 2017.10.19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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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시 관광객 7년 사이 한해 3천명에서 150만여명으로

2010년 폐광 개발 나서…25개 콘텐츠 갖춘 테마동굴로 성장

성공 요인 들여다봤더니
①발상의 전환
②자치단체장 의지
③브레인스토밍

광명동굴은 개방 6년 만에 연간 150만명이 찾는 폐광의 기적을 이뤄냈다. 광명동굴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폐광의 기적’, 인구 34만명의 경기 광명시를 최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서울시와 경기 광명시는 철산대교로 이어진다. 철산대교는 1970~80년대 고속 경제성장 속에 ‘수출의 다리’로 불릴 만큼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철산대교 건너 옛 구로공단(현 구로 디지털 도시)에는 저임금 일자리가 넘쳐났고 공단내 중소업체들은 땅값이 싼 광명시에 기숙사단지를 두었던 탓이다.

‘서울의 위성도시’이면서 전형적 ‘베드타운’이 경기 광명시의 옛 기억이라면 30여년이 흐른 2017년 광명시는 국내 유일의 동굴테마파크가 있는 ‘판타지 도시’로 탈바꿈했다. 7년 전인 2010년까지 광명시를 찾는 관광객은 한해 3천여명에 그쳤지만 지금은 광명동굴에만 한해 150만여명이 찾는다.

 

경기 광명시에서 7년 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20일 오전 광명시 가학동에 이르자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굴뚝 너머로 야트막한 산이 하나 보였다. 220m 높이의 가학산이다. 가까이 가자, 광명동굴을 보러 꼬리를 물고 계단을 오르는 어린이와 어른들의 모습이 다가왔다. 안명선 광명시 공보팀장은 “평일 방문객이 1천~3만명에 이르고 성수기에는 광명동굴 입장에만 2시간 이상도 걸린다”고 했다.

광명동굴의 애초 이름은 시흥광산이었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금, 은, 동 등을 캐내면서 ‘황금광산’으로 불린 수도권 최대 금속광산이었으나 1972년 폐광됐다. 광명동굴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39년만인 2011년 8월 동굴 일부가 공개되면서였다.

“동굴에 차는 고사하고 사람이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동굴 주변을 봐도, 동굴 안을 봐도 그저 캄캄했죠. 첫 개방 때는 공사용 작업등에 의존해 동굴에 갔고 안팎의 온도 차가 20도 이상이다 보니 한마디로 ‘냉풍욕장’인 셈이었죠.” 당시 광명동굴 테마개발과장을 지내고 지금은 퇴직한 최봉섭 전 광명시 국장의 설명이다. 열악한 주변 환경에 더해 국내 최초로 조성되는 인공 테마동굴이다 보니 기술적 전례가 없던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김원곤 광명시 동굴시설운영팀장은 “누군가 한 번이라도 지나갔던 길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모든 게 처음이었다”고 했다. 사진 측량학에서 고속도로 비탈면이나 암반을 보강하는 방식을 역산으로 뒤집어서 동굴 안을 사진과 3D로 찍은 뒤 이를 기초로 동굴 탐방로와 안전시설을 조금씩 확대해야 했다. 개발 첫해 200m까지 개방된 동굴은 6년이 지난 현재 전체 7.8㎞ 중 1.8㎞가 개방됐고 하나 둘 콘텐츠를 갖추면서 연간 150만명이 찾는 테마동굴로 재탄생했다.

 

인공동굴인 광명동굴에는 1.8㎞에 이르는 동굴 내부에 25개의 콘텐츠가 있어 관람객들의 환상의 세계로 이끈다.

‘폐광의 기적’이라는 광명동굴의 성공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많은 이들이 광명시의 ‘발상의 전환’을 꼽는다. 동굴 개발 초기 ‘그 많은 돈을 쏟아붓는다고 폐광 개발이 성공하겠냐’는 수군거림도 많았다. 국내에는 종유석 등을 지닌 천연동굴도 많다. 광명시는 그러나 천연동굴은 동굴에 전연 손을 댈 수 없고 접근에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점을 역이용했다. 광명동굴은 2500만명의 수도권 배후 인구를 두었고 1시간 이내에 수도권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다. 이밖에 인공동굴 안에 자유롭게 창의적인 문화콘텐츠를 입히는 게 가능했다. 2013년 동굴 예술의 전당을 시작으로 동굴아쿠아월드, 동굴지하세계와 와인동굴 등 25개의 콘텐츠가 차례로 들어섰다. 동굴에서는 여자권투 세계챔피언전은 물론 최근의 바비인형전까지 다양하고 이색적인 문화이벤트들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예상은 적중했다. ‘냉풍욕장’으로 무료 개방되던 2011~2012년 한해 4만여명이던 관람객은 동굴 내 콘텐츠를 갖추고 유료화가 이뤄진 첫해인 2015년 90만명을 넘었고 2016년 142만명, 2017년 현재 1백만명을 돌파했다.

최봉섭 전 국장은 “처음 유료화하고 첫날 5천명이 왔다. 무료 개방이던 2014년 여름 때보다 2배 많았다. ‘어 이거 봐라 돈을 내라고 유료화했는데 더 왔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동굴에서 나오는 시민들이 ‘돈을 내지만 아깝지 않네’, ‘이런 콘텐츠가 다른 데는 없는 거네’라는 반응을 듣는 순간 이들은 성공을 예감했다.

다음으로는 ‘자치단체장의 의지’였다. 양기대 광명시장이 광명동굴을 처음 방문한 것은 2010년 8월로, 시장에 당선되고 한 달 뒤였다. 양 시장이 동굴개발 꿈을 꾸었듯 여러 전임 시장들 역시 동굴개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양 시장은 꿈을 실천에 옮겨 전임자들과 달랐다고 광명시 공무원들은 말한다.

양 시장은 동굴 개발과 관련해 “세계적으로 특화할 수 있는 테마동굴로 가자”고 했고, 2011년 43억원을 들여 동굴을 매입했다. 다음 해인 2012년 동굴 개발 전담부서인 테마개발과를 설치하고 광명동굴에 투입된 예산 838억원 중 30%에 이르는 251억원을 국·도비로 확보하는 뚝심을 발휘하면서 동굴 개발에 힘을 실었다.

‘폐광의 기적’ 뒤에는 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개발 초기 안팎의 회의론과 기술적 어려움 속에서도 콘텐츠에 승부를 걸었지만 이 또한 쉽지 않았다. 동굴 보강과 확대, 현장 공간의 활용과 콘텐츠 선정처럼 하나하나의 문제를 해결할 때마다 시장과 공무원들은 밤낮으로 20~30차례씩 회의를 이어갔다. 5년째 동굴 개발에 매달리고 있는 김동수 광명시 동굴문화기획팀장은 “동굴테마개발과에 처음 발령 났을 때 중학교 3학년이었던 아이가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군대 간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광명동굴은 동굴에 흠뻑 빠진 시장과 공무원들이 일궈낸 협업의 산물인 셈이다.

광명동굴은 개방 6년만에 연간 150만명이 찾는 폐광의 기적을 이뤄냈다. 광명동굴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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